[논평]국가 인권위 성폭력 사건 기각에 대한 의결 처분 취소 판결을 환영하며

by 연맹 posted Sep 15,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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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평]국가 인권위 성폭력 사건 기각에 대한 의결 처분 취소 판결을 환영하며

까르푸 여성 노동자, 성폭력 사건 승소 판결

2006년 9월 12일 서울 행정 법원은 한국 까르푸 노조가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를 상대로 제기한 까르푸 면목점 성희롱 사건 기각 처분 취소 소송(2006년 3월 3일)에서 까르푸 노조의 손을 들어주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이태종)는 “가해자가 회식 자리에서 여직원들에게 그들이 원치 않는 신체접촉행위 등의 성적 언동을 함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끼게 한 행위는 국가인권위법 제2조 5호에 의거 성희롱에 해당한다"며 "인권위가 회식 내에서의 유씨의 성적 언동을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위법하다"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사건이 발생했던 2005년 5월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해당 사건의 생존자인 까르푸 여성 노동자들은 성폭력 사건의 진실을 밝혀내기 위해 끈질긴 현장 투쟁과 소송 투쟁을 전개해왔다. 까르푸 노조 및 한국 성폭력 상담소는 지금까지 투쟁해온 여성 노동자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이번 승소 판결을 통해 가해자 및 그들을 변호하는 까르푸 자본에게 강력한 경고하며 국가 인권위의 가부장성을 성찰하길 권고한다.

인권위, 무엇이 문제인가?

인권위는 면목점 성희롱 사건에 대해 증거 불충분 및 피해자 간의 상이한 진술을 근거로 동일 가해자에 의해 발생한 5개의 성희롱 사건 전부를 기각했다. 조사 과정에 있어 인권위는 상이한 진술을 놓고 일부 피해자들의 진술 번복과 가해자의 사실 부인에만 치중하여 기본적인 자료 검토조차 방기하는 등 상식 이하의 가해자 중심적 태도를 보였다. 조사 내용에서 드러나는 인권위의 성폭력에 대한 인식은 더욱 심각하다. 성폭력 속에 내재한 권력관계를 면밀히 살피는 것이 사건 해결에서 매우 중요한 지점이다. 그러나 인권위는 본 성희롱 사건의 가해자 집단이 여성 노동자들의 고용주 혹은 상사로서 성별 권력관계 뿐만 아니라 엄격한 직급간의 권력을 쥐고 있다는 점을 망각했다. 이 같은 엄격한 권력 관계 속에서 피해 여성들이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웠고, 일부 피해자들의 진술 번복이 충분히 발생할 수 있음을 인권위는 인식하지 못했다. 또한 인권위는 성적인 신체 부위와 그렇지 않은 부위, ‘사회 통념상 허용할 수 있는 것들’ 과 같은 임의적 잣대로 성희롱 여부를 결정하는 오류를 범했다. 이처럼 성폭력 및 성폭력 사건 처리에 대한 ‘인권’위의 매우 협소한 이해와 가부장적 태도는 피해자들에게 더 많은 대립과 장기간의 법정 공방을 강제했던 것이다.

인권위는 이번 행정소송을 시작하며 “법적 강제력을 띄지 않는 권고기관으로서 피고에게 권고조치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 표현만으로는 원고의 법적 지위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라 주장하며 행정소송 성립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인권위가 정치적 약자의 권리구제라는 자신들의 임무를 저버렸다는 고백이며, 준사법기구로서 인권위의 책임과 존재가치 에 대한 자기 부정이다. 제3권과 분리된 독립기관으로 국가인권위법에 따라 독자적인 임무를 수행한다는 인권위는 사법부로부터 국가인권위법 위배라는 판결을 받았다. 사법부의 판결로 강제된 의결 처분 취소. 우리는 국가 인권위가 과연 ‘독립’적인 ‘인권’ 기구인지, 그리고 이들에게 가부장제 속에 고통 받는 여성의 문제를 맡길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까르푸 자본은 이번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여성 노동자들의 피해를 보상하라!

이번 사건은 단지 인권위에 대한 비판으로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성폭력 가해자와 그를 비호한 까르푸 자본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명백한 경고를 잊지 않아야 한다. 까르푸 자본은 피해자 일부와 그녀들의 동료집단에게 불이익의 위협을 가하며 사건을 무마하려 했고 까르푸가 성폭력으로부터 안전지대임을 허위 선전하면서 노조를 상대로 명예 훼손 소송을 제기하는 등의 심각한 2차 가해를 계속해왔다. 이번 판결을 통해 가해자 및 그의 지지 집단이었던 까르푸 자본은 엄중한 죄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면목점 성희롱 사건은 까르푸 내에서 발생한 성폭력 사건 중의 일부이다. 2002년부터 2005년까지 까르푸에서 남성 상관으로부터 여성 노동자에게 가해진 언어적, 신체적, 정신적 성폭력은 무려 10건에 육박한다. 이는 공개된 경우에 한한 수치에 불과할 뿐, 까르푸 내부의 성폭력 사건은 매우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성폭력 사건의 대부분은 까르푸 자본의 암묵적 혹은 노골적인 가해자 비호로 인해 피해자의 퇴사나 전환 배치, 피해자 가정 파탄 위기로 마무리되며, 알려지지 않은 성폭력의 경우 고스란히 피해자만의 몫으로 남겨진다.

까르푸 자본의 문제는 비단 성폭력 처리 과정에만 있지 않다. 근본적 문제점은 까르푸 자본가 집단이 가진 가부장성과 이를 기반으로 한 까르푸의 성차별적 직무 및 노동 환경 구조에 있으며, 이는 까르푸를 포함한 서비스 유통 현장 전체의 문제이다. 허술한 성폭력 예방 교육, 기혼 여성 노동자에 대한 노골적인 무시, 관리직의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남성 매니저가 그들의 부하직원으로서 여성 노동자에게 행하는 감시와 통제, 서비스 여성 노동자들에게 강제되는 감정노동, 이 같은 가부장적 구조 속에서 서비스 유통 여성 노동자들은 직접적/환경적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고 있다.

우리는 이번 면목점 성폭력 사건을 통해 까르푸 자본의 이러한 만행에 종지부를 찍고자한다. 가해자 및 까르푸 자본은 성희롱 사건에 대해 정중히 사과하고, 피해자들의 요구에 따라 가해자에게 응당의 징계를 내릴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또한 보다 체계적인 성폭력 예방교육의 실시하며 사내 반(反) 성폭력 규약 및 강력한 처별 규칙을 제정할 것을 요구하는 바이다. 그리고 우리의 이러한 운동이 서비스 유통 전 현장에 확산될 수 있도록 투쟁할 것이다.

우리들의 여성주의 투쟁은 계속된다.

까르푸 면목점 성폭력 사건을 통해 까르푸 및 서비스 유통 자본의 가부장성이 여실히 폭로되었다. 또한 까르푸 여성 노동자들의 성폭력 투쟁과 그 성과로서의 일부 승소 판결은 여성 노동자들의 끈질긴 투쟁을 통해 성폭력 없는 노동 환경에 한 발짝 다가간 유의미한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아직도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 대해 가해자 및 까르푸 자본에게 엄중히 죄를 묻는 것, 소송 투쟁 과정에서 피해자들이 받은 상처를 함께 어루만지는 일, 여성 노동자 스스로가 여성주의적 목소리를 키우고 가부장적 자본가 및 관리자 집단과 다양한 형태의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현장에서부터 여성 노동자들의 권리와 요구를 관철해가는 힘찬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한국까르푸노동조합
(사)한국성폭력상담소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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