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식 전문기자

발행 2016-10-05

'알아서 긴다'라는 말이 있다. 지난 9월 30일 국방부가 사드 배치 지역 변경에 관해 이른바 '제3부지' 관련 발표를 보면서 기자가 느낀 생각이다.

국방부는 이날 무엇이 두려운지 카메라 앞에서 공식 발표도 못 하고 슬쩍 보도자료를 배포하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러면서도 '관계자'를 내세워 사드를 내년 상반기에 조기 배치할 것이라고 언론플레이를 감행했다. 그리고 곧바로 "한국에 배치될 사드는 미 본토에서 현재 운영 중인 사드 포대가 올 것"이라는 보도가 뒤를 이었다. 무엇이 이렇게 급하게 된 것일까?

지난 9월 27일, 대니얼 러셀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에 출석해 "사드 배치를 가속화하고자 한다. 나는 '가능한 한 빨리'라고 말하고 싶다(we intend to deploy on an accelerated basis, I would say, as soon as possible.)"고 밝혔다. 이에 관해 9월 29일, 미 국방부는 기자의 질의에 "사드 시스템 배치는 실행할 수 있는 한 빨리한다는 것을 약속한 바 있다"고 밝혔다.

또 10월 5일, 미 국방부는 정례 브리핑에서도 사드 한국 배치에 관해 "우리는 한국(정부)과 가능한 한 빨리 사드 시스템을 배치하는 것에 관해 긴밀히 협의하고 있다(we'll be working very closely, as you know we have been, with the Republic of South Korea with regard to installing that system as quickly as possible.)"고 강조했다. 북한의 위협에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동맹 결정'을 내세운 사드 한국 배치를, 한마디로 이제는 "빨리'하겠다는 것이다.

지난해 3월 17일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조태용 외교부 차관과 면담을 한 대니얼 러셀 美 국무부 차관보

지난해 3월 17일 서울 세종로 외교부 청사에서 조태용 외교부 차관과 면담을 한 대니얼 러셀 美 국무부 차관보ⓒ정의철 기자

애초 올해 초에 한미 양국이 사드 한국 배치를 결정하면서 그 시기는 내년(2017년) 말이 될 것이라고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그 핵심적인 이유로 한국에서 2017년 말에 대선으로 정권이 교체되기 전에 배치를 완료해야 정권 교체에 따른 영향을 받지 않을 것임을 내세웠다. 하지만 이 역시 내년 상반기만 되면, 한국도 대선 정국으로 접어들어 사드 배치 찬반 이슈가 다시 부각할 가능성이 커 그렇게 신빙성이 높지 않은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미국 오바마 정부가 갑자기(?) 이렇게 사드의 한국 배치를 신속하게 해야 한다고 들고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미국 대선이다. 미국은 오는 11월 8일 대선을 실시한다. 그리고 내년 1월 20일에 현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는 끝나고 새로운 대통령이 취임해 행정부를 관할한다. 이른바 '오바마2'로 불리는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거의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 바뀔 가능성이 없다. 하지만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될 경우 상황은 완전히 돌변한다.

트럼프의 외교정책이 그의 막말처럼 다소 '횡설수설'로 비치고 있지만,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 트럼프는 사드로 대표되는 미국의 미사일 시스템 한국 배치에 대해서는 분명한 반대를 이미 표명했다. 트럼프는 지난 7월 21일, 뉴욕타임스(NYT)와 가진 외교정책에 관한 인터뷰에서도 "언젠가는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북한 미사일을 요격하려면 한국에 미사일방어체제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에 "우리는 그곳에 오랫동안 미사일방어체계를 배치해왔다. 하지만 지금 객관적으로 봐도 그 시스템은 실제로 쓸모가 없다(practically obsolete)"고 잘라 말했다.

쉽게 말해, 사드 시스템의 한국 배치도 필요 없고 더 나아가 기존에 배치된 미국 군사 자산도 필요 없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이날 인터뷰에서 "우리 미군이 전진 배치되지 않는다면, 미 본토를 방어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진다"는 사회자의 반론에도 "미국 본토를 방어해야 할 이유가 있으면, 그때 파병하면 되고, 그게 더 비용이 훨씬 절약된다"고 자신의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러한 트럼프가 집권하게 된다면, 한국의 사드 배치는 트럼프에게는 매우 좋은 이슈가 된다. 한국에서도 반대 여론이 일고 있는 사드 배치 추진을 간단히 철회하면서, 자신의 집권으로 외교정책이 바뀌었다는 신호탄을 쉽게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사드 한국 배치를 강행하고 있는 오바마 행정부의 관계자들은 바로 이점을 정확히 간파하고 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빨리, 신속한 배치'를 들고 나오는 것이다.

즉, 앞으로 약 3개월 안에 사드 한국 배치를 구체적으로 확정지어놓지 않으면, 오바마 행정부의 미사일방어(MD)정책도 그리고 이에 편승한 미 군산복합체의 사드를 비롯한 무기 판매 전략도 한마디로 '꽝'이 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사드 신속 배치'를 추진해야 하는 오바마 현 행정부의 다급함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미국 사정이 아닌가? 정말 박근혜 정부나 한국 국방부가 국가 안보를 걱정한다면, 미국의 정권이 어떻게 교체되든 차질없이 준비할 수 있는 전략을 세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최근 사드 도입에 관해 한국 정부나 이를 추진하는 국방부의 행태를 보면 거의 힐러리 당선에만 '올인'하고 있는 느낌이다. 그러나 미국 대선 결과가 현 오바마 행정부의 뜻을 받들어 '알아서 기는' 한국 국방부의 뜻대로 움직여 줄지는 미지수다. 정화수 떠놓고 힐러리의 당선을 천지신명께 빌고 있는 한국 국방부의 모습이 처량해 보인다. '자주국방'을 외치면서도 대체! 뭣들 하는 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