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P “트럼프 면담은 반 총장의 정치적 미래 가치” 비꼬아, 유엔에는 냉기류

김원식 전문기자

2016-12-28

사실상 대선 출마를 선언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추진해온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의 면담이 불발되는 분위기다. 반 총장 측의 구애에도 트럼프 측이 면담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대선 출마를 앞두고 외교 무대 경력을 과시하려고 한 반 총장이 오히려 궁색한 처지에 놓였다는 분석이다.

반 총장과 트럼프 당선인은 미 대선 사흘 후인 지난달 11일(이하 현지시간) 약 20분간 통화했다. 반 총장은 지난 20일, 한국 특파원들과 가진 고별 기자회견에서 "통화는 서로 정중하게 잘 됐다"며 "제가 '한번 만나서 유엔의 여러 문제를 협의하자'고 했더니 (트럼프 당선인도) '대단히 좋은 생각'이라고 했다"면서 트럼프와 곧 면담이 있을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반 총장의 임기 만료 5일 전인 27일까지도 두 사람의 '일대일 면담' 일정이 잡혔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오히려 트럼프 측은 애초에 면담을 추진하지도 않았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와 관련 미 외교, 안보 전문매체인 포린폴리시(FP)는 지난 24일, '트럼프가 반기문과의 면담 약속을 거절(snub)했다'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트럼프가 미국의 주요 동맹인 한국의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 반기문과의 일대일(face-to-face) 면담을 철회(backtracked)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반 총장이 지난번 트럼프와의 통화에도 주로 (혼자) 기후 변화 등 유엔의 여러 이슈를 설명했다"며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듣는 분위기(mode)였다"고 보도해 애초에 면담 약속도 확실하지 않았음을 시사했다. 또 유엔 외교관들의 말을 인용해 이는 트럼프 당선인이 반 총장을 무시(snub)한 것이자, 트럼프 정부에서 유엔과 미국과의 관계가 전과 같지 않을 것을 예고하는 것으로 분석했다.

FP는 반 총장 측의 유엔 한 고위 관계자는 "우리는 통화에서 합의된 대로 면담을 잡기 위해 노력했다"면서 "그러나 그들은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식 전에는 어떤 외국의 외교관도 개인적으로 만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아베 일본 총리는 물론 트럼프가 필요에 따라서는 대상을 불문하고 여러 인사를 만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이는 면담 불발에 따른 궁색한 변명이라는 평가다.

트럼프 당선인 측이 반기문 총장에게 반감을 갖는 이유는 최근 유엔과의 냉기류도 한몫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 23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가 팔레스타인 자치령 내 이스라엘 정착촌 건설 중단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미국의 기권 속에 채택하자, 즉각 "1월 20일 이후 유엔의 상황은 달라질 것"이라며 반발했다. 또 26일에는 유엔을 "모여서 떠들고 즐기는 사람들의 클럽"으로 비하하면서 정면으로 비판했다.

트럼프는 반 총장이 유엔 재임 시절 성과물로 내세우는 '파리기후협정'에도 대통령 취임 이후 탈퇴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그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도 기후변화의 실체를 "정말 아무도 모른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거두지 않았다. 또 트럼프가 니키 헤일리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를 유엔 주재 미국대사에 내정한 것을 놓고서도 유엔 외교가에서는 우려가 나온다. 헤일리 주지사는 트럼프 진영의 핵심이 아닌데다, 사실상 외교 경험이 전무해 트럼프가 유엔의 위상을 그리 높게 평가하고 있지 않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FP는 "반기문 입장에서는 (결국) 한국의 가장 중요한 동맹이자 방어국인 미국의 새로운 지도자와의 개인적인 관계를 만들어 보려 했다"며 "트럼프와 마주 앉는 것은 그의 정치적 미래에 매우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라며 트럼프와 면담이 불발된 반 총장의 처지를 비꼬았다. 외교가 일각에서는 반 총장 측이 여러 상황상 트럼프와의 면담이 가능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일대일 면담 추진을 언론에 흘러 궁색한 처지를 자초했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