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리포트] 백화점 영업시간은 고무줄?
  
2003년 05월 09일

글 황보연 기자 (hbyoun@economy21.co.kr)  

  


30분 영업시간 늘리고 휴점일은 월1회로 줄여…‘과당경쟁’에 직원들 허리만 휜다


4월28일 오후 롯데백화점 노원점에서 만난 여직원 조아무개(31)씨는 허리와 무릎관절이 너무나 약해졌다고 털어놨다. 입사 11년째인 조씨는 숙녀복 매장에서 일한다. 자세가 흐트러지면 고객에 대한 예의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 낙인찍히기 일쑤다. 앉는 것은 물론이고 힘들다고 잠시 벽면에 기대는 것 조차 상상하기 어렵다. 늘 서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런 저런 통증을 호소하는 백화점 직원들이 꽤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에 비해 휴식시간은 점심시간과 간식시간을 제외하면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다리가 퉁퉁 붓는 것은 다반사고, 눈이 느끼는 피로도 대단해요. 워낙 조명이 강한 곳에 오래 있으니까요. 그래서 10명 가운데 2, 3명은 건강상의 이유로 그만둬요. 임신초기 유산하는 경우도 꽤 있구요.” 말문이 트이자 조씨의 불만섞인 목소리는 점점 높아져갔다. 상황이 이런데도 백화점에서는 계속 영업시간을 늘리는 쪽으로만 가고 있다는 것이다.

얼마 전 롯데백화점은 5월부터 10월까지 영업시간을 30분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백화점은 오전 10시30분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영업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앞으로는 오후 8시까지 영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전에도 세일기간이나 명절, 크리스마스 등 대형 이벤트가 있는 날에는 30분에서 1시간씩 연장영업을 해오기는 했다. 하지만 이를 아예 공식화시켜버린 것은 처음있는 일이라고 한다.

하지만 영업시간을 30분 늘리면 그만큼 직원들의 퇴근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조씨는 “30분 연장되면 퇴근시간은 1시간 늦어진다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폐점시간을 오후 8시로 잡아도 실제 고객들이 모두 빠져나가는데는 10~15분정도가 더 걸린다. 이 때부터 각 카드사별로 전표와 매출을 정리하고 현금매출을 맞춰보고, 사무실에 가서 최종입금까지 마치면 30분 이상이 걸린다. 물론 그날 계산이 잘 맞아떨어진다고 가정했을 때의 이야기다. 여기에다 다음날 행사준비까지 해야 하는 날은 퇴근시간이 더 늦어진다. 특히 세일기간에는 단독기획상품, 올인상품, 대박상품 등등 어찌나 행사가 많은지 업무량이 배는 늘어나기 마련이다.

더욱 심각한 것은 영업시간 뿐 아니라 영업일수도 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원래 오늘도 휴점일이었어요. 그런데 4월달엔 한 달에 두 번있는 휴점일을 한 번으로 줄이자고 하더라구요. 세일기간이 끼어있는 달은 그만큼 매출목표가 높게 설정돼 있어 거기에 맞추려고 하는 거죠.”

노조가 힘이 있는 현대백화점을 제외하고 롯데와 신세계백화점은 4월달에 하루(14일)만 문을 닫았다. 정기세일기간이 끼여있는 달이라고는 하지만 언제부턴가 월1회 휴점을 정착시키려는 의도가 보인다는 게 직원들의 이야기다. 애초 월2회 휴점 계획을 잡아놔도 매출이 떨어지면 만회하기 위해 휴점일을 줄인다는 것이다.

그래도 백화점 직영사원들은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한다. 백화점 매장에는 보통 직영사원과 협력업체에서 파견된 판매사원, 파트타이머들이 섞여 있다. 이들을 구별하는 방법은 백화점 뺏지를 달았는지, 아닌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한 개층에서 직영사원들의 비율은 10%에 지나지 않는다. 휴점일이 줄어들면 규모가 작은 업체는 판매사원을 많이 둘수 없기 때문에 부담이 가중된다. 파트타이머를 세워놓고 휴가를 다녀오는 경우도 허다하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요즘 백화점에선 6개월을 넘기는 판매사원을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업계를 찬찬히 훑어보니 이미 조용히 영업시간 연장을 공식화시켜 버린 곳도 적지 않았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도 마찬가지다. 지난 3월부터 오후 8시까지 영업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문득 그 곳 풍경이 궁금해져 발길을 돌렸다. 지하철 고속터미널 역에서 지하 1층으로 이어지는 백화점 입구에 들어서니 빨간 테두리를 한 팻말이 맨 먼저 눈에 띈다. 팻말은 연장된 영업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저녁 7시. 백화점을 찾기엔 좀 늦다싶은 시간인데도 지하 식품매장과 1층 잡화매장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북적인다. 퇴근하고 장을 보기 위해 백화점을 들른 직장여성들이 많아 보인다. 반면 2층부터 9층까지의 매장은 한산해 보였다. 우선 식품매장에 들어서서 뺏지를 단 직영사원을 찾아봤다. 식품매장에서 일하는 최아무개(29)씨. 아침 9시30분에 나와서 지금까지 서 있는 그의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주차확인 도장 어디서 찍어요?” “이거 계산 잘못됐잖아요.” 쉴 새 없이 찾아오는 고객들을 보니 고개가 끄덕여진다. 기자가 말을 한번 걸면 대답을 듣기 위해 족히 2~3분은 기다려야 했다. 손님을 맞는 얼굴 한켠에 머금은 미소가 안쓰러워보인다. 연장영업을 한 뒤부터 저녁 손님이 20~30%정도 늘었다고 한다. 회사에서 수당을 더 받긴 하지만 별로 달갑진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 친구들을 만나기 힘들다보니 인간관계도 자꾸 좁아지는 것 같아 속상하다고 한다. 유난히 사내결혼이 많다는 백화점에서 9년째 일한 그도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다.

폐점시간인 8시가 가까워와도 손님들은 계속 들어온다. 요즘은 폐점방송도 8시 정각에만 나온다고 한다. 손님들이 불안하지 말라는 뜻에서다. 계산을 맞춰보고 매장을 정리하는 일도 완전히 손님들이 빠져나간 다음에야 시작한다. 역시 예전과는 달라진 모습이다. 자연스레 최씨의 퇴근시간도 조금씩 늦어진다. 시간이 지날 수록 그에게 더 이상 말을 거는 것은 불가능해보인다.

그렇다면 백화점쪽에서는 영업시간 연장으로 어느 정도의 효과를 보고 있는 걸까. 신세계 강남점 마케팅팀의 장대규 주임은 “30분 연장으로 식품과 잡화쪽 매출비중이 5%정도 올라갔다”고 말한다. 하지만 순익기준으로 보면 차이가 없다고 한다. 영업시간을 30분 늘리기 위해서 들어가는 추가비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란다. 우선 직원들에게 연장근무 수당과 석식을 지급해야 한다.

여기에다 영업시간이 늘어나는 만큼 수도광열비 등 각종 관리비용도 늘어난다. 결과적으로 이익이 남기 힘들다는 것이다. 대신 장주임은 “고객만족도를 높여 장기적인 매출효과를 노리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게다가 최소 밤 10시까지 심야영업을 하는 할인점을 의식하면 최소한의 영업시간 연장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일각에서는 유통업체들의 과당경쟁을 불식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유통노조들의 상급단체인 서비스연맹 김형근 위원장은 “몇해 전 백화점 셔틀버스를 일시에 폐지시킨 것처럼 영업시간도 업계의 무리한 경쟁을 규제할 수 있는 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독일의 경우 노동자들의 휴식권을 보호하기 위해 상점폐점법을 제정해 일요일이나 공휴일은 영업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어느 한 업체가 시작하면 다른 업체가 따라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더군다나 누가 먼저인지도 알 수 없게 각 업체별로 일부 점포부터 차근차근 영업시간을 늘려왔다. 예컨대 롯데가 5월1일부터 영업시간 연장을 발표하자, 주요 점포만 실시하고 있던 신세계도 슬그머니 본점과 미아점의 영업시간을 늘렸다. 그러나 누가 먼저 깃발을 들었냐고 물어보면 서로 발을 빼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질세라 현대백화점도 “우리만 일찍 문을 닫을 순 없지 않느냐”며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 업태간 경쟁도 만만치 않아 백화점의 영업시간 연장은 할인점으로까지 곧바로 여파가 미치고 있다. 하지만 어차피 너나 할 것없이 영업시간을 늘리면 각 업체별로 돌아갈 매출효과도 줄어들 수밖에 없다. 추락하는 매출실적을 끌어올리기 위한 비상구를 다른 데서 찾아볼 순 없을까. 누구나 다 하는 경품이벤트나 영업시간 늘리기에 국한하지만 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