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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랜드 홍콩증시 상장 저지 국제연대 원정투쟁단 소식
원정투쟁일기-5

원정투쟁단에게는 남모르는 고통이 있다. 어떤 투쟁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원정단이지만 이 고통만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고 한다. 바로 잠을 자는 일이다.

롯데호텔에서 일식 조리사로 일하는 박동식 씨는 현재 노조에서 서비스연맹으로 파견한 간부다. 스스로를 ‘파견 노동자’라 부른다. 궂은 일은 파견 노동자에게 다 맡겨진다며 농담을 한다. “이랜드 뉴코아 노동자들과 함께 홍콩에 와서 싸울 수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이제 몇 달 뒤에는 다시 호텔 주방으로 복귀를 한다. 홍콩 원정투쟁은 연맹 파견 활동 기간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될 거라고 한다.

박동식 대협국장은 “김석원 동지와 자는 일 말고는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한다. 김석원 조합원과 첫날 함께 방을 썼다. 새벽 1시께 담요를 들고 사회진보연대의 한지원 씨의 방으로 왔다. 김석원 씨가 코로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는 방을 꽝꽝 울리게 한다며 화장실 앞 바닥에 잠자리를 편다.

다음날은 한지원 씨가 김석원 조합원의 방에서 자겠다고 자청을 했다. 물론 새벽 1시께 담요를 들고 방을 옮겼다. 오케스트라 연주도 연주지만 갑자기 숨이 멈추는 긴장의 순간을 연출하는데 자신도 숨이 멎는 것 같아 도저히 잘 수가 없더란다.

덕분에 김석원 씨는 넓은 방을 독차지 했다. 한지원 씨는 박동식 국장에 이어 화장실 문 앞에서 자야 했다.

오늘(3일) 아침도 하늘에 구름이 가득하다. 시원스레 비라도 내리면 좋으련만 비는 오지 않고 후덥지근만 하다. 한지원 씨는 어제 기자회견에 온 언론사의 신문을 사러 나섰다.

홍콩의 대표 언론사인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와 <애플 데일리>에서는 이랜드 공모 첫날 ‘관심을 끌지 못했다’는 기사가 실렸다. 또한 원정투쟁단의 홍콩에 입국한 배경과 10개월 간의 파업농성에 대해 자세히 다루었다. 이 밖에 <동방일보>와 <홍콩 이코노믹 타임지> 등도 원정투쟁단 기자회견 내용을 사진과 함께 상세히 다루었다.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의 기사의 보도처럼 <이랜드 패션 차이나 홀딩스>는 홍콩 증시에서 관심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고 공모가 지지부진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이랜드는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 기업 금융 섹션 5면에 전면 광고를 내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영국계 사모 펀드에서 4천억을 이랜드가 유치했다는 한국 기사를 본 원정투쟁단은 “홍콩 원정 투쟁에 주어진 책임이 더욱 무거워졌다”며 결의를 더욱 다지는 모습이다.

원정투쟁단은 오전 홍콩 시위에서 선보일 퍼포먼스에 쓰일 물품들을 구매하여 홍콩노총 사무실에서 직접 제작을 하였다.

또한 홍콩 상공회의소를 통해 알아낸 이랜드 사무실과 증시 상장 주관사인 시티은행, 골드만삭스, UBS 사무소 및 국제금융센터를 답사하여, 내일부터 본격적인 시위농성에 들어갈 예정이다.

홍콩노총은 “탕(Tang) 총간사를 비롯한 모든 간부들이 원정투쟁단의 모든 일정을 공유하며 적극 지원지지 해주고 있다”고 박동식 서비스연맹 대협국장이 밝히고 있다.

원정투쟁단은 “평화적인 방법을 통하여 홍콩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홍콩 시민들에게 보일 포퍼먼스는 아직까지는 밝힐 수 없다고 한다.

퍼포먼스 준비물을 만든 원정투쟁단은 홍콩노총 간부들과 함께 이랜드 사무실을 찾으러 나섰다. 홍콩 상공회의소를 통해 확인한 ‘이랜드 인터네셔널’ 사무실을 찾아갔다. 주소지에는 이랜드 사무실이 없었다. 빌딩 경비에게 물어봤지만 ‘이랜드’는 들어본 적도 없다고 한다. 증시 상장 선전자료에 나온 또다른 이랜드 사무실 주소를 찾아갔지만 마찬가지다.

홍콩노총 간부들은 "이런 경우가 있냐“며 고개를 갸웃거린다. 박동식 서비스연맹 대협국장은 ”마피아 조직도 아니고 왜 꼭꼭 숨는지 열이 받는다. 해외에서도 투자자들에게 사기치는 것이 아니냐“며 분노를 감추지 못한다.

오후 5시 55분, 원정투쟁단 본대가 공항에 도착했다. 입국소감을 묻자, “아직은 얼떨떨하다. 최선을 다해 싸워야지 다른 무슨 말이 필요하냐”고 답을 한다.

한영희 뉴코아 조합원, 이남신, 김애수 이랜드일반노조 조합원, 서강본 민주노총 서울본부, 권미정 경기본부, 권미정 민주노동당, 이랜드 기독교 대책위 이성욱 목사가 입국하여 원정투쟁단에 합류하였다.

홍콩 UNI(UNION NETWORK INTERNATIONAL) 사무실에서 원정단과 홍콩 사회단체와의 간담회가 시작되었다.

이랜드 투쟁영상을 함께 본 뒤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와 이랜드와 뉴코아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오 함께 한 경험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영상에서 경찰에 연행되는 이랜드 노동자의 모습을 본 뒤, 구속된 사람이 몇 명이고, 현재 어떤 상황인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보였다. 뉴코아 간부들이 수배가 되어 아직도 민주노총 건물에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는 설명을 듣고 홍콩 시민단체 회원들은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홍콩노총 쳉 칭 팻 위원장은 “이랜드 노동자의 투쟁은 재벌과 노동자의 싸움인가 아니면 신자본주의와 이랜드 노동자의 싸움인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신자본주의 세계화 속에서 한국의 비정규직 노동자의 싸움은 바로 홍콩 노동자의 싸움과 같다”고 밝히자, 원정투쟁단은 큰 박수를 치며 홍콩 노동자의 연대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또한 “중국에서도 이랜드 그룹이 한국과 비슷하게 아웃소싱을 하고 해고를 한 사례가 있다”며 홍콩노총도 이랜드 그룹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감시를 할 거라고 한다.

UNI 간부는 원정투쟁단에게 “원정단이 요구하면 우리는 뭐든지 할 각오가 되어있다”며 연대의 의지를 밝혔고, 원정투쟁단의 일정을 소개하며 많은 홍콩 노동자의 참여를 독려했다.

또한 홍콩에서는 이랜드가 중국 본토와 같이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투쟁 방법에 좀 더 신중을 기해 줄 것을 당부하였고, 초점을 중국의 금융 증권에 맞춰 달라는 부탁을 하기도 했다.

서비스 노동자라고 밝힌 한 참석자는 “힘차게 투쟁하는 한국 노동자를 만나 너무 반갑다”며 연신 원정투쟁단의 얼굴을 카메라에 담기도 했다.

간담회를 통해 홍콩 사회단체와 원정투쟁단의 관계는 단순한 지원의 차원을 넘어 연대의식과 공동투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기사를 쓰고 나니 새벽 2시 45분이다. 교정도 보지 못하고 취재수첩을 그대로 보낸다. 좀더 생생한 기사를 쓰고 쉽지만 눈이 감긴다.

원정투쟁단은 선발대의 그 동안의 활동을 공유하고 이후 투쟁일정을 논의하느라 아직 잠자리에 들지 않고 있다.


원정투쟁일기-6

홍콩원정투쟁 닷새째다. 모처럼 홍콩의 하늘이 맑다. 빌딩 숲 속에서 조각난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선발대에 이어 본대가 합류하여 원정투쟁단의 얼굴을 더욱 기운차보인다.

김애수 홈에버 노동자는 “아침 햇살이 맑아 찌부둥한 마음을 가시게 하네요. 하늘이 맑은 걸 보니 홍콩에서 좋은 일이 생기겠네요.” 좋은 일이란 하나다. 정든 일터에서 동료들과 마음 편히 일하는 것이다.

주일이다. 김애순 씨는 기독교 신자다. 김애순 씨는 이남신 이랜드일반노조 수석 부위원장과 서강봉 민주노총 서울본부 부본부장, 기독교 대책위 이성욱 목사와 함께 교회를 찾았다.  

“어릴 적부터 교회를 다녔어요. 이랜드 인수하기 전인 이천년에 까르푸에 입사했지요. 유통업에 다니다보니 일요일에 쉬지를 못하니 주일을 지키기가 힘들었어요. 교인들이 저 대신 기도를 많이 해줘요. 홍콩에 오면 주일날 꼭 예배를 드리고 싶었어요. 빨리 승리할 수 있게 해달라고 하면 욕심일까요.”

굽은 허리의 김애수 씨는 영어로 진행되는 주일 예배 내내 두 손을 꼭 마주잡고 있다. 김애수의 기도를 예수님은 들었을까. 이 시간 이랜드 그룹의 박성수 회장도 기도를 했을 것이다. 예수님은 누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까.

어제 본대가 도착하여 원정투쟁단의 모습이 제대로 갖춰진 듯 하다. 지난 노동절 집회 때는 1인 3역을 하느라 진땀을 뺏다. 박동식 서비스연맹 대협국장은 한 손에는 10Kg이 족히 나가는 유인물 뭉치를 들고 한 손으로는 현수막을 든 채 2시간 가까이 거리행진을 했다.

원정투쟁단은 예산이 부족하다 보니 차량을 빌리지 못했다. 모든 집회 용품을 두 손을 이용해 들고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을 해야 했다. 물론 본대가 왔다고 해서 편해진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만으로도 어깨에 짊어진 유인물 뭉치가 가벼워졌다고 박동식 국장은 너스레를 떤다.

오후 세시, 국제금융센터 건너에 있는 페리호 선착장 앞에서 선전전과 집회를 갖었다. 일요일이라 많은 시민들이 오가는 곳이다. 현수막을 펼치고 선전물을 벽에 붙이자마자 방송기자들이 몰려왔다. 원정투쟁단이 홍콩에 오게된 이유를 밝히고, 홍콩노총이 이랜드 투쟁 지지 연설을 하였다. ‘님을 위한 행진곡’을 홍콩 노동자와 원정투쟁단이 자신의 언어로 한 박자가 되어 불렀다. 집회를 마치고 행진에 들어가려고 하자 방송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이미 <사우스 차이나 모닝 포스트>등 유력 일간지에 기사가 나간 뒤라 방송기자들의 질문은 한차원 깊어지고 더욱 날카로웠다. 또한 한국과 홍콩의 노동시장과 고용 방식의 차이가 많아 인터뷰 시간은 길어졌고, 답변을 한 김석원 뉴코아 조합원은 진땀을 빼야했다. “회사가 망하기를 바라냐”는 질문도 나왔다.

김석원 조합원의 눈에 잠시 핏발이 섰지만 곧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일터로 돌아가 일을 하겠다며 300일을 거리에서 싸우는 조합원에게 그 질문은 심장을 오리는 칼처럼 아프게 느껴졌을 것이다.

“영어가 능숙하지 못해 충분히 설명을 해서 이해를 시키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다”며, “이렇게 기자들의 관심이 높을 줄 알았으면 더욱 준비를 했어야 했는데……”라며 서운해 했다.

하지만 홍콩노총 관계자들은 “홍콩에서 노동자의 문제에 영향력 있는 일간지와 방송사에서 취재 열기가 일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다”며 “이미 충분한 반응과 성고가 나타나는 거다”며 긍정적 평가를 했다.

아직 홍콩에는 이랜드 매장이 없어, 일반 시민들은 이랜드라는 이름조차 낯설어하고 있다. 유인물도 받아가는 사람보다는 받지 않는 사람이 많다. 한 시민은 “꼭 뜻을 이뤄 돌아가라”며 격려의 말을 남기기도 했다.

집회장에는 정복경찰만이 아니라 곳곳에 사복경찰도 집회를 지켜보았다. 경찰은 집회 발언을 전부 받아적고, 유인물 내용을 전화를 통해 어딘가로 전달하기도 했다.

집회와 거리행진은 평화적으로 끝났다. 홍콩노총의 간부들이 휴일인데도 많이 나와 집회에 함께 했다. 홍콩 시민단체는 이랜드 유인물을 시민들에게 나눠주며 한국의 노동자들이 왜 홍콩에 와서 이랜드의 증시 상장을 반대하는지 설명하였다.

자그마한 키에 굽은 허리, 김애수 조합원은 유인물을 들고 홀로 시내 곳곳을 누빈다. 한 장이라도 더 건네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표정 한 번 바뀌지 않고 묵묵히 자신의 일을 찾아한다. 김애수 씨가 전하는 유인물은 종이가 아니라 간절한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다. 촬영을 하며 쫓아다니다보면 렌즈에 자꾸 서리가 낀다.

홍콩의 방송과 신문에 이랜드 노동자의 홍콩투쟁이 어떻게 실릴지 모른다. 하지만 이랜드라는, 홍콩에서 낯선 기업은 일반공모에 진통을 거듭할 거라고 예상이 된다. 노동자를 대화의 파트너로 보지 못하는 기업으로 세계적 망신을 살 것인가, 아니면 노동자와 대화를 통하여 발전의 길로 들어갈 것인가, 공은 이랜드 그룹에게 넘어갔다.

내일(5일)은 국제금융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평화적이지만 적극적인 투쟁을 벌이겠다”고 원정투쟁단은 밝혔다. 다양한 형태의 선전전과 함께 이랜드 홍콩상장 주관사에게 반윤리 기업 이랜드의 일반공모 중지를 요구할 예정이다.

또한 원정투쟁단은 “홍콩에 있다는 세 곳의 이랜드 사무실이 모두 허위인 것으로 파악됐다”며, “페이퍼 컴퍼니들이나 하는 부도덕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며 이에 대한 대응 작업도 펼쳐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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