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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질 한진자본과 노무현 정권 노동탄압에 항거한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동해방열사 전국투쟁대책위원회


기자회견문

□ 일시 : 2003년 10월 18일(토) 오전 10시
□ 장소 : 부산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
□ 참가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단병호(민주노총 위원장), 권영길(민주노동당 대표), 정광훈(전국민중연대 공동대표), 김세균(전국민중연대 공동대표), 오종렬(전국연합 의장), 홍근수(자통협 상임대표), 정현찬(전국농민회총연맹의장), 김홍연(전빈련 의장), 손호철(민교협 대표), 한상열(통일연대 상임의장), 서상권(범민련 부경연합 의장)

□ 내용 :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은 한진재벌과 노무현 정부 노동탄압이 부른 참극이다

1. 한진중공업 김주익 지회장의 죽음은 한진재벌과 노무현 정부의 노동탄압이 부른 참극이다.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민중연대 등이 함께 꾸린 "악질 한진자본과 노무현 정권 노동탄압에 항거한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동해방열사 전국투쟁대책위원회"는 노무현 정부에게 ▲노동탄압 정책 중단 ▲손배가압류 구속수배 해제 ▲부당노동행위 근절을 요구하며 강력히 대응할 것이다.
또한 전국투쟁대책위원회는 악랄한 노동탄압으로 김주익 지회장을 죽음으로 내몬 한진재벌에 대해서도 분명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한편 민주노총 부산본부를 포함한 부산지역 노동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부산지역투쟁대책위원회를 꾸려 정부와 한진재벌을 규탄하기 위한 활동 역시 활발히 펼쳐나갈 것이다.

2. 노무현 정부의 노동탄압은 벌써 심각한 수준이다. 이를 기회로 사용자들은 더욱 더 악랄한 방법으로노동조합을 탄압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하에서 사용주의 비인간적인 손해배상과 가압류로 많은 노동자들이 큰 고통을 받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 1월 두산중공업 노동자 배달호 씨가 분신자살한 이후 사용주가 무분별한 손배가압류를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정부차원에서 대책마련을 하겠다고 했으나 여전히 44개 사업장 1천700억원대의 손배가압류가 남아있다. 또 노무현 정부 하에서도 운송하역노조, 굳모닝한주,인천지하철 등 3개 사업장에서 새로 손해배상·가압류를 청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철도파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직접 75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또한 노무현 정부는 취임 7개월만인 9월 23일까지 110명의 노동자를 구속했다. 이는 노무현 정부 취임 211일 동안 이틀에 한명 꼴로 구속한 것으로 노태우 정권과 김영삼 정권이 출범 첫 해 각각 80명과 87명을 구속한 것을 이미 초과했다.

3. 노무현 대통령은 대기업노조의 집단이기주의와 전투적인 노동운동이 문제라면서 노사관계를 개혁하겠다며 노동조합에 대한 공격적인 이념공세를 계속 펴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 재신임을 묻겠다고 한 이후 국회 시정연설에서 노사관계에 관해서 파업을 절반으로 줄이고 노사관계를 반드시 개혁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노사관계 개혁방안이라는 것이 파업시 대체근로 허용, 사용주의 공격적인 직장폐쇄 인정 등 사용주의 대항권을 강화하고 노동조합를 탄압하고 무력화하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난 6월말 철도파업을 공권력으로 폭력 진압한 후 급속하게 반노동자적인 정책으로 돌아선 노무현 정부의 노동정책은, 한진재벌을 비롯한 사용주들이 노동조합에 대해 전면적이고 공세적인 탄압을 벌이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

4. 한진중공업은 상반기 매출 부산 1위, 순이익 부산 2위를 기록했다. 작년 당기순이익만 해도 239억원이다. 그러나 한진중공업은 2002년 임금동결을 주장했고, 작년 3월부터는 불법적으로 650명의 노동자를 해고했다. 이에 해고반대 투쟁을 한 노동조합 간부 20명의 임금,주택과 노동조합비에 대해 7억4천만원의 손해배상·가압류를 자행했다. 노동조합이 파업에 들어간 이후에도 적극적인 교섭으로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개별 조합원에게도 손해배상·가압류를 하겠다는 등 악랄한 노동탄압을 계속해왔다.
한편 검찰과 경찰은 10월 1일 김주익 지회장을 포함한 6명의 금속노조, 지회 간부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하고 이들을 잡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한진재벌, 검찰, 경찰이 공동으로 노동조합을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5. 고 김주익 지회장은 죽음은 노무현 정부의 노동탄압과 악랄한 한진재벌의 노동조합 죽이기에 의해 일어난 참극이다. 고 김주익 지회장의 시신은 고인의 뜻에 따라 정부와 한진재벌의 노동탄압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85호기 크레인에 안치되어 있을 것이다. 유족도 이후 교섭·장례투쟁과 관련한 일체의 대책을 전국투쟁대책위원회에 위임했다.
전국투쟁대책위원회는 매일 아침 8시 30분, 저녁 7시 노무현정권과 한진재벌의 노동탄압을 규탄하는 집회를 한진중공업 사내 투쟁광장에서 개최하고 22일에는 전국투쟁대책위원회 차원의 대규모 집회를 오후2시 부산역에서 개최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책위는 노무현 정부와 한진재벌이 김주익 지회장을 죽음으로 내몬 노동탄압에 대해 반성하고 이를 즉각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손배가압류 금지법을 제정하고, 노동자 구속·수배 등 노동탄압을 중단하라! 그리고 사용자들의 부당노동행위 근절을 위한 특단의 조처를 취하라! 만약 정부의 반성과 전향적인 자세가 보이지 않는다면 전국투쟁대책위원회는 모든 조직력을 동원해 강력히 투쟁해나갈 것이다.

2003년 10월 18일(토)

악질 한진자본과 노무현 정권 노동탄압에 항거한
한진중공업 김주익 노동해방열사 전국투쟁대책위원회


[첨부자료]한진중공업 투쟁 일지 및 탄압 현황

1. 고 김주익 지회장 약력 및 가족관계

- 생년월일 : 1963년 2월 2일생(만 40세)
- 주소 : 부산시 사하구 하단동 520-29 13/3
- 가족관계 : 미망인(박성희 : 36세) 아들(준엽 : 12세), 딸(혜민 10세), 아들(준하 : 7살)

1975년 2월 철암초등학교 졸업
1975년 3월 철암중학교 입학
1978년 2월 철암중학교 졸업
1978년 3월 태백기계공고 입학
1981년 2월 태백기계공고 졸업
1982년 2월 (주)대한조선공사 직업훈련소 입소
1982년 8월 1일 (주)대한조선공사 (현)한진중공업 입사
1990년 8월 제28대 대의원, 문체부장
1992년 8월 제30대 수석부위원장
1993년 8월25일 제30대 부위원장 역임
1994년 제 31대 사무국장 역임
1994년 7월 LNG 선상 파업투쟁으로 구속, 강제휴직
1995년 8월 원직복직, 산업안전보건위원
1996년 8월 제34대 대의원
1997년 8월 제35대 대의원
2000년 11월5일 한진중공업 통합 노동조합 초대위원장 당선
2002년 11월 금속노조 한진중공업 지회장 재당선(임기중)


2. 한진중공업 노조탄압 현황

1) 한진중공업 2002∼2003년 투쟁 경과

○ 2002년 3월 6일 : 관리직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빌미로 한 강제사직, 3월20일 생산직으로 확대(650명)
○ 2002년 4월 12일 : 사측, 손배소 및 가압류 제기(4월20일 결정)
○ 2002년 4월 15일 : 사측, 잉여인력 138명 교육실시
○ 2002년 4월 30일 : 희망퇴직 관련 노사합의
○ 2002년 5월 30일 : 강제사직에 항의한 파업전개
○ 2002년 6월 6일 : 금속노조 가입
○ 2002년 8월 21일 : 임금교섭 관련 조정신청(8월29일 조정중지)
○ 2002년 8월 31일 : 교육훈련후 교육관련 노사합의를 어기고 사측, 45명 자택대기발령
○ 2002년 9월 9일 : 쟁의행위 결의
○ 2002년 12월 18일 : 제2차 임금교섭 재개
○ 2003년 1월 20일 ∼ 2월20일 : 부분파업 및 전면파업 전개
○ 2003년 2월 28일 : 2003년 임단협 요구안 사측에 전달
○ 2003년 3월5일∼4월3일 : 노동청 주선으로 3차례 노사 간담회 가졌으나 사측 입장변화 없음.
○ 2003년 4월 7일∼ 5월 14일 : 간부 야간투쟁
○ 2003년 6월 11일 : 지회장, 부지회장 삭발
○ 2003년 6월 11일 밤 11경 지회장, 현장내 3,4도크에 있는 크레인 점거하여 고공농성 전개
○ 2003년 6월 27일 : <악질 한진자본 규탄 금속노조 확대간부 결의대회>
○ 2003년 7월 22일 : 한진중공업 전면파업 돌입
○ 2003년 7월 23일 : 35m 크레인 주변 50여동의 천막 설치, 천막농성 시작
○ 2003년 7월 18∼19일 : 노동부 중재하에 노사협력팀과 ▲손배가압류 철회
▲해고자 복직 ▲징계철회 ▲임금 7만5천원 인상 ▲타결금 50만원 ▲성과급 100%지급 등의 현안문제를 일괄타결하기로 구두 합의함.
○ 2003년 7월 24일 : 사측, 회사 임원회의에서 구두합의 내용이 승인되지 않았다며 합의사항을 번복함.
○ 2003년 8월 13일 : <금속노조 영남권 확대간부 한진중공업 규탄집회>
○ 2003년 9월 10일 ∼ 13일 : 추석연휴기간에도 천막농성 계속
○ 2003년 9월 11일 : 태풍 매미로 인해 크레인 180도 회전, 김주익지회장 구사일생
○ 2003년 10월 1일 : 한진중공업 투쟁과 관련, 6명의 간부에게 체포영장 발부. 김주익 한진중공업지회장, 변재규 금속노조 부양지부장, 정홍형 금소노조 부양지부 사무국장, 김양수 한진중공업지회 수석부지회장, 김인수 한진중공업지회 사무장, 차해도 한진특수선지회장
○ 2003년 10월 초 : 사측, 150억원여를 민사소송하겠다고 밝힘. 민사소송을 제기하겠다는 것에 합의하지 않으면, 현안문제 논의를 할 수 없다고 주장.
○ 2003년 10월 13일 : 사측, 한진중공업 마산특수선지회 180명 조합원에게 가정통신문을 발송. 10월 15일까지 복귀하지 않으면 조합원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손해배상 청구 협박
○ 2003년 10월 14일 : 사측, 특수선을 이용하여 새벽 2시부터 크레인 뒤에 있는 선박 빼냄
○ 2003년 10월 14일 : 노조, 사측에 교섭 요구. 사측, 김주익 지회장이 내려와야만 교섭할 수 있다고 교섭 거부
○ 2003년 10월 17일 : 새벽 김주익 지회장 35m 크레인 위에서 밧줄에 목을 매 자결. 지회장 크레인 고공농성 129일, 한진중공업지회 파업 88일
※7월 24일, 구두약속 파기 후 회사쪽은 한진중공업지회 현안문제 (▲손해배상 가압류 해제 ▲부당징계 철회 ▲고용안정 협약서 작성 ▲해고자 원직복직 ▲2002년 임금 및 단협 갱신교섭에 성실히 임할 것 등)와 관련해서 아무런 입장이 없는 상태임.
특히 손해배상 가압류 철회 불가와 핵심간부 사법처리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어 진전이 없음. 사측은 언론플레이를 통해 개인손배가압류를 철회하겠다고 여러차례 밝혔으나, 급여가압류만 해제하고 주택과 퇴직금, 조합비가압류는 계속되고 있음.


2) 한진중공업 노조탄압 요약

- 조합원 수 : 1,265명(부산+마산+울산공장)
- 주 생산품 : 컨테이너선, LNG선 등 중대형 상선, 고속선, 특수선, 선박수리 및 개조

■ 주요 요구
가. 손해배상·가압류 해제
나. 부당징계 철회
다. 해고자 원직복직
라. 고용안정 협약서 체결
마. 2002년 임금 및 단협 갱신교섭 성실히 참가 등

■ 내용
- 2002년 2월 중순경 회사가 인력체질 개선이라는 미명하에 정리해고를 단행해 650여 명의 노동자들이 길거리로 내몰림.(희망퇴직, 권고사직 등등의 이름으로 자행됨)

- 노사간 체결된 단체협약(제28조)에 따르면 60일전 통보하여 인원정리 및 절차에 관하여 협의하도록 되어 있어 노조에서는 특별단체교섭을 요구하였으나 회사측은 노사협의로 주장하여 교섭에 불응하고 타결점을 찾지 못함. 이에 노조는 쟁의행위결의, 조정신청, 파업찬반투표 등 적법한 절차를 거쳐 전면파업, 부분파업, 간부파업, 가두시위 등을 전개해 왔음

- 이에 회사는 2002년 5월부터 노동조합비와 김주익 지회장을 비롯하여 20명의 상집간부의 임금, 주택에 대하여 무려 7억4천4백여만원에 이르는 손해배상청구와 가압류를 행하여 엄청난 고통을 주고 있음.
그리고 김주익 지회장 등 간부 14명을 업무방해·폭행 등의 혐의로 사법당국에 고소고발하여 노용준 부지회장은 지난해 6월 한달여의 옥고를 치르고 벌금 400만원의 형을 받았음.
그 외 3명의 간부도 각각 벌금 100만원, 70만원, 50만원의 형을 받은바 있으며, 나머지 고발건에 대해서는 검찰조사 중임. 더구나 회사측이 고소고발한 간부 2명은 경찰수사 끝에 무혐의 처리되기도 하여 회사측이 노동조합을 탄압하기 위하여 근거도 없이 무턱대고 고소고발부터 하는 파렴치한 짓을 저지름. 이로 인해 지난 10월 1일 경찰은 고 김주익 지회장을 포함하여 6명에 대해 체포영장 발부.

- 결국 2002년 3월 1일부터 시작된 2002년 단체교섭이 현재까지 타결되고 있지 않고 있음. 특히 회사쪽은 2001년 당기순이익 93억, 2002년 7천 6백억 매출목표를 달성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임금동결만 반복해서 주장하고 있다.

- 이로 인해 노동조합 김주익 지회장이 2003년 6월 11일부터 지금까지 35M 고공 크레인에서 목숨을 건 농성투쟁을 129일동안 전개했고, 2003년 7월 22일부터 지금까지 88일동안 약 600여명의 조합원이 전면파업을 전개해왔다.

- 7월 18∼19일, 노동부 중재하에 노사협력팀과 ▲손배가압류 철회 ▲해고자 복직 ▲징계철회 ▲임금 7만5천원 인상 ▲타결금 50만원 ▲성과급 100%지급 등의 현안문제를 일괄타결하기로 구두 합의했으나 사측은 7월 24일에 합의사항을 번복함.

- 회사측은 '선 조업 후 교섭'을 주장하면서 대화와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음. 노조의 교섭 요구에도 "지회장이 크레인에서 내려오면 생각해보겠다"며 교섭요구를 묵살하고 있었음. 이는 그동안 한진중공업 사측이 현장 노동자를 대표하고 있는 노동조합의 정당한 임금교섭에 대하여서도 아무런 이유 없이 불참하여, 오히려 노사간의 불신의 벽을 조장하고, 노동조합 자체를 말살하려는 구시대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노조관을 버리지 못함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임.

**김주익열사의 유족은 가족회의를 통해, 장례를 비롯한 모든 법적인 권한을 전국금속노동조합에 위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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