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달라" 민주노총·서비스연맹,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 건강권 확보 캠페인
"서비스.유통 여성 노동자에게 의자를!!"
‘앉을 권리’를 위한 서비스 노동자들의 작은 반란이 시작됐다. 온종일 서서 일하다 퇴근하면, 다리가 저려서 잠이 오지 않는다는 서비스노동자들이 ‘매장에 의자 놓기’ 운동에 나선 것이다.
19일 민주노총과 서비스연맹은 기자회견을 열고 유통·서비스 여성노동자 건강권 확보를 위한 의자제공 운동에 돌입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산업안전영역에서 소외돼 하루종일 서서 일해야 하는 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의 건강권을 위해 의자 제공을 촉구하는 등 ‘의자 캠페인’을 벌이겠다는 것이다.
서비스 노동자에게 의자는 단순히 앉는 도구가 아닌 ‘존중받고 일할 권리’의 표현이다. 김지희 민주노총 부위원장은 “외국의 경우 서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에게 의자를 제공한 결과 서비스 노동자에게 가해지는 폭력행위가 줄어들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의자 제공 캠페인이 노동자에 대한 존중으로 이어져 노동자의 몸과 정신의 건강을 보장하는 효과적인 수단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윤간우 원진녹색병원 산업의학과장은 “하루종일 서서 일할 경우 하지정맥류와 다리와 발의 근골격계질환은 물론 심혈관계질환, 조산이나 유산 등의 위험이 높다”며 “상당수의 서비스 여성노동자들이 이같은 질병을 가지고 있지만 업무상재해라는 인식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의자 제공 캠페인을 위해 다음달 말까지 서비스 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를 벌인 뒤 5월부터 백화점을 중심으로 한 유통매장에 의자를 놓기 위한 실질적인 사업을 펼치겠다고 밝혔다.
영국테스코 ‘앉아서’ 삼성홈플러스 ‘서서’ 일해
산업안전보건법의 산업보건기준에 관한 규칙(제277조)에는 “사업주는 지속적으로 서서 일하는 근로자가 작업 중 때때로 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때 이용할 수 있는 의자를 비치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백화점을 비롯해 대형마트, 고속도로 휴게소 등 대부분의 매장은 서비스 노동자가 이용할 수 있는 의자를 찾아볼 수 없다. 서비스연맹에 따르면 지금은 없어진 경기도 부천에 위치한 현대쇼핑에서 90년대 중반 노동자가 이용할 수 있있도록 의자를 비치한 적 있지만 ‘거만하다’는 고객들의 지적 때문에 이마저도 치워버렸다.
그러나 유럽의 경우 서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의 의자 제공은 일반화돼 있다. 산업안전전문가와 노동단체로 구성된 ‘서서 일하는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사업기획단에 따르면 스웨덴에서 하루 업무 중 10분의 1을 서서 일하는 노동자는 20%도 되지 않는다. 또한 영국의 가장 큰 노조 중 하나인 유통업체노동조합(USDAW)은 장시간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제공하는 것을 안전보건 주요의제로 삼고 있다.
2005년 7월 런던의 폭탄테러로 영국의 화랑들이 ‘경비를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경비원의 의자를 치워버리자 USDAW가 강력한 항의운동에 나서 경비원의 의자를 되찾은 사례가 있다. 한 신발업체가 상점의 계산대를 서서 작업하는 방식으로 교체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해 논란이 될 정도다.
영국의 산업안전보건법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의자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우리나라에 비해 보다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다는 점이다. 영국 산업안전보건법에는 ‘노동자의 작업(또는 작업의 상당량)이 앉아서 할 수 있거나, 앉아서 해야만 하는 작업일 경우 노동자에게 적절한 의자를 제공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고, 작업을 수행하는 사람에게 불편함이 있을 경우 적절한 의자로 볼 수 없다는 단서조항도 달려 있다. 또 ‘필요하다면 적절한 발판이 제공돼야 한다’는 조항도 있다.
이에 따라 영국의 최대 유통업체인 테스코에서 일하는 계산원들은 앉아서 일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계산대에서 일한다. 그런데 테스코가 지분의 90% 가까이 소유하고 있는 삼성홈플러스의 계산원들은 하루종일 서서 일하고 있는 실정이다.
김신범 노동안전보건센터 교육실장은 “우리나라 사업주들은 산업안전보건법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의자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 자체를 모르고 있고, 서비스 노동자들 역시 앉아서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다”며 “사업주와 노동자는 물론 소비자들도 ‘앉아서 일해도 서서 일하는 것과 마찬가지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 민중의 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