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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인권.gif

 

서비스연맹과 국가인권위원회가 공동으로 여성감정노동자에 대한 기획기사를 제작하였습니다.

 

이번 인터뷰에 함께 해 주신 단위노조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국가인원위원회에서 발행하는 격월간지 인권에 감정노동에 대한 특집기사가 2회에 걸쳐 게재될 예정입니다.

 

 http://www.humanrights.go.kr/hrmonthly/monthly.jsp?no_idx=20030 클릭하시면 기사를 웹진으로 보실수 있습니다.

 

 

여성 감정노동자 - 웃어도 웃는 게 아닌(글: 강은숙-차별조사과)

화가 나도 ‘고객님~’, 가슴이 멍들어요

‘감정노동’이란 말을 들어보셨나요? 물건의 가치를 감정하는 노동? 일하면서 감정 상하는 노동? 감정노동은 소비자와 같은 대중과 접촉하면서 자신이 의지를 가지고 어떤 마음 상태를 생산해야만 하는 일입니다.

흔히들 노동이라고 하면 제품을 만들거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우를 생각하는데, 감정노동은 일을 하면서 노동자가 의식적으로 자신의 마음 상태까지도 특정한 기준에 맞추어 만들어야 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마트에서 물건을 판매하거나 콜센터에서 상담하는 노동자들을 연상해 보세요. 소비자들을 대하면서 ‘친절하고’, ‘상냥하고’, ‘유쾌한’ 표정과 말투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이 기억나시죠?

감정노동을 굳이 정의하자면 ‘업무상 요구되는 특정한 감정상태를 연출하거나 유지하기 위해 행하는 일체의 감정관리 활동이 직무의 40% 이상을 차지하는 노동유형‘입니다. 여기에서 업무상 요구되는 감정상태란 바로 소비자들을 대하는 기쁘고, 즐겁고, 호의적인 마음가짐이고, 감정노동자들은 그런 마음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의식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어서 오십시오, 정말 감사합니다.‘라고 계속 고개 숙여야 하는 판매원, ’사랑합니다, 반갑습니다.‘라고 인사해야 하는 콜센터 상담원, 90도로 절하며 소비자를 맞이하는 접객서비스 종사자들이나 안내원들이 감정노동자죠. ’고객감동‘, ’고객제일주의‘ 속에서 감정노동자들은 힘들고 몸이 고되도, 반복되는 인사에 지쳐도, 심지어는 무리한 소비자들의 요구에도 죄송하다고 원치 않는 사죄를 반복하면서 지쳐갑니다.

우리나라 270만 여명이 판매나 음식점업 등 서비스분야에 종사하고 있으니, 일하는 여성의 상당수가 감정노동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판매원, 레스토랑 접객원 등 여성 감정노동자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 이유입니다.
 
 
미소짓는 여성 감정노동자, 속은 숯덩이

“사람들한테 쌍욕 듣고 자식 같은 사람들한테 욕 얻어먹고 그런다는 거 알면 여기 와서 계산일 할 사람 없거든요. 뭘 하나를 줘도, 돈도 그렇고 거지 돈 적선하듯이 딱딱 던져주는 거예요.”

“고객한테 욕을 먹어도, 내가 그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자리를 비우면 같이 일하는 직원한테 피해를 주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그 자리를 벗어날 수 없죠. 간다고 해도 복도나 화장실이에요. 그냥 눈이 뻘개져도 매장에 서 있어야 되는 거예요.”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난 여성 감정노동자들은 소비자들이 불편이 없도록 편의를 제공하고,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서 현명한 소비를 돕는 것이 자신들의 일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일하면서 돈도 벌고 사회생활에 참여하는 성취감도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면서 소비자들의 반말이나 하대, 무리한 요구, 막상 잘못이 없어도 무조건 소비자들에게 빌어야 하고 형식적이고 기계적인 인사와 표정 관리를 강요당하는 상황 때문에 고통이 적지 않다고 호소했습니다.

“우리가 완전히 꼭두각시처럼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게 자존심도 상하고. 시키니까 어쩔 수 없이 하긴 하지만 진짜 좀 우러나는 고객 서비스가 아니고 시켜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좀 많이 그렇죠.”

“누가 들어도 우리가 잘못한 거 아니어도 죄송하다, 이야기해야 하는 거고. 우리 직업에 대해 너무 화가 나고. 하루 종일 말도 하기 싫다가, 그게 집에 가서 애들한테 가고 신랑한테 가는 거죠.”

여성 감정노동자들이 일하면서 감정적으로 소진되고 더욱 지치는 것은 ‘여성은 친절하고 상냥하다.’는 고정관념 속에서 사회적으로 상당수 여성들이 수행하는 감정노동을 제대로 평가하지 않는 데에도 그 원인이 있습니다.

“여자들 하는 일이고, 하찮은 직업이라고 생각을 하니까, 그러니까 저희한테 폭언을 할 수 있는 거죠. 이런 것 때문에 우리는 상처를 입는 거고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 거고.”

“매너가, 그냥 있었으면 좋겠어요. 매너 중에 뭐 하나 말고 매너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서로 존중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생활 속 인권 실천, 여성 감정노동자 인권 찾기

국가인권위원회가 만난 여성 감정노동자들은 자신의 일을 정당하고 필요한 직업으로 평가해주고 당당한 직업인으로 인정해주기를 원했습니다. 여성 감정노동자들을 대하는 소비자들의 인식과 태도가 보다 성숙해진다면, 사업주들이 여성 감정노동자들에게 필요한 휴게실이나 휴식시간을 제대로 마련하고
소비자들의 폭언 등으로부터 여성 감정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체계적인 관리방안을 마련한다면, 그리고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 일하는 여성에 대한 상식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이들의 소박한 요구가 꿈만은 아닐 것입니다.

 

 

서비스 노동자, 아니 인간에 대한 예의 | 글 임상혁

‘감정노동(Emotional Labor)’은 아직 국내에서 좀 낯선 용어지만 이 노동 방식의 특징으로 인해 이미 많은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 이 개념은 미국의 여성 학자 혹쉴드(R. Hochschild)에 의해 1983년 〈관리된 심장(The Managed Heart)〉이라는 이름의 책으로 세상에 모습을 나타냈다. 다양한 선행연구에 따르면 감정노동은 ‘연기를 하듯 타인의 감정에 맞추기 위해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고 통제하는 일을 일상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으로 일컬어지며 여성의 경우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노동 방식을 가능케 하기 위해 기업에서는 각종 ‘친절 교육’ ‘CS 교육’ 등을 진행하고 ‘고과평가’로 마무리 짓는다.



감정노동이 생기게 된 배경에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항공사의 과당경쟁이 출발점이었지만 현재에 와서는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서비스 패턴으로 자리 잡았다. 즉, 경쟁적 상품 또는 서비스 판매 시장에서 ‘웃음 끼워 팔기’를 하면 시장을 더 빠르게 점유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 출발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제 보편화되어 모든 사업자가 ‘웃음까지 덤으로’ 팔아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영역에 종사하는 인구 규모가 우리나라 전체 취업자의 40% 가까이 된다는 점이다. 우리나라 서비스산업 종사자는 총 취업자의 약 70%인데 서비스산업에서 감정노동을 수행하는 종사자 수가 과반을 넘을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그 규모는 향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주요 선진국의 서비스산업 취업자 비중은 이미 80% 수준에 육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이 직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도소매 판매 종사자, 콜센터 노동자, 음식·숙박업종의 접객 분야 종사자, 운송산업의 객실 승무원이나 역무 노동자, 병원의 간호·간호조무·간병 노동자, 보험판매원·학습지 교사·골프장 경기보조원 등의 특수고용 노동자, 그리고 민원을 상대하는 공공 부문(공무원, 교사 등) 노동자 등 그 범위가 매우 넓다. 대부분 여성이 집중적으로 종사하는 업종이라는 특징을 보인다.

문제의 핵심은 이 감정노동이 노동자에게 높은 직무 스트레스를 유발해 정신적, 육체적 불건강을 낳게 한다는 것이다. 감정노동 상태에 과도하게 노출되면 노동자는 ‘탈진(모든 기운이 다 소진되어 타버린 것처럼 되는 상황)’ ‘우울증’ ‘외상후스트레스장애(강력한 충격이 무의식 속에 남아 계속적인 재경험으로 나타나는 증상)’ ‘면역 결핍’ ‘음주, 흡연, 도박 중독’ 등의 상태에 빠지게 된다. 결국 아주 불행한 ‘자살’이라는 선택을 하는 노동자도 있고 견디다 못해 이직을 하는 경우는 다반사다. 그러나 이직을 하더라도 완전히 새로운 직종으로 옮기기도 어려우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러한 사례가 노동자 개인의 피해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가족 관계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어 안정적 사회 재생산 구조에도 적신호가 켜지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감정노동 수준은 세계적으로 맹위를 떨치고 있다. 전국적, 전 업종 수준에서 조사가 진행된 바는 없지만 지난해 노동환경연구소가 실시한 민간 서비스 노동자 삶의 질 실태조사 등 몇몇 연구 결과에 따르면 다른 나라에서 가장 ‘탈진’ 수준이 높은 직종보다 우리나라 몇몇 서비스 업종에서의 탈진 수준이 현저히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사회・문화적 특성이 ‘친절이 몸에 밴’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직장에서는 과도한 ‘연기’와 부당한 ‘고객 복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그 감정적 저항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난다. 우리보다 더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알려진 일본의 경우 서비스산업 노동자의 가치는 좀 다르다. 그들의 사회・문화적 배경 하에서 친절은 당연한 것이지 강요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항감도 상대적으로 적은 것으로 나타난다. 반면 서구에서 서비스 노동자가 ‘웃음을 얹어 파는’ 경우는 거의 구경할 수 없다.
감정노동이 이렇듯 많은 문제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문제의 심각성이 널리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노력과 모색이 필요하다.

첫째, 범사회적 ‘친절 이데올로기’에 대한 재고가 필요하다. 친절한 것이 무엇이 나쁘겠는가마는 친절한 것이 무조건 옳다는 식의 생각을 만든다는 것이 문제다. 고객이라 할지라도 일반적 상거래상의 규칙은 지켜야 한다. 그런데 서비스 노동자들 앞에서 이런 규칙은 여지없이 무너지고 만다. 구매자의 위치에 있는 고객은 절대 권력을 갖게 되고 서비스 노동자는 부당한 요구를 감내해야 한다. 친절해야 한다. 이 당혹스러운 상황을 지지·지원하는 시스템은 기업의 경영전략이다.
둘째, 작업장에서의 폭력·폭언·성희롱에 대한 문제인식을 강화시켜야 한다. 사업장 내의 직원 간에 발생할 수 있는 폭력·폭언·성희롱 문제가 아직 근절되지 못한 상황에서 고객에게서 비롯되는 폭력·폭언·성희롱 문제에 적극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우리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호텔, 병원 등의 사업장에서는 아직도 상급자에 의한 폭력·폭언이나 남성에 의한 성희롱이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물론 고객에게서 비롯되는 폭력·폭언·성희롱의 비중이 훨씬 높지만 가장 편해야 할 내부관계에서조차 이런 현실이라면 갈 길이 먼 것이다.
셋째, 구제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고객으로부터 극도의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었을 때 긴급하게 노동자를 엄호할 수 있는 체계가 없다. 호소할 곳도 마땅치 않다. 심지어 부당한 요구를 하는 고객 앞에서 상급자가 노동자에게 면박을 주는 경우도 있다. 그런 경우 해당 노동자는 극도의 정신적 불안정, 쇼크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충격을 받은 노동자 대부분은 좀 울고 흥분을 가라앉힌 후 바로 본래 업무로 복귀하게 된다. 이는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내고 만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 없었던 일이 되는 것이다.

감정노동 문제를 하루아침에 해결하기는 어렵다. 사회・문화적 풍토와 기업의 경영전략, 정부의 강력한 규제, 공급자와 소비자 인식의 전환 등 바뀌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마냥 늦출 수만도 없다. 제대로 관리되면 저절로 친절이 우러나오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 수 있고, 서비스 노동자가 건강하게 살아가고 경쟁력 있는 서비스산업 발전으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 임상혁 님은 녹색병원 노동환경건강연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괜찮습니다, 손님” | 글 박수정 그림 최호철



김정숙(가명) 씨는 29년째 한 호텔에서 일한다. 객실을 ‘상품’으로 만드는 호텔객실정비서비스(룸메이드) 노동자다. 객실청소・정비 업무 외주화가 90% 넘어 이제 몇 안 남은 정규직 노동자다.
객실 하나당 20~30분, 혼자 13실을 청소하고 뒷정리와 보고서 작성까지 마치려면 하루가 바쁘다. 이 일에는 일정한 순서와 방법이 있다. 지침을 따라야 빠뜨리는 일이 없다. 커다란 침대매트를 끌어내 팽팽하고 각지게 시트를 갈고, 목을 뒤로 젖혀 커튼을 단다. 걸레를 빨아 꽉 짜고, 엎드려 욕조를 닦는다. 목과 허리, 팔목에 무리가 가는 일이다. 그래도 손님이 문을 열어 첫눈에 ‘이 호텔 좋구나’ 느끼게끔 최선을 다한다.

객실에선 쓰레기를 치우는 일도 긴장해야 한다. 손님이 반지나 틀니 등을 휴지로 싸놨다가 없어졌다고 하는 일도 있기 때문이다. 코 푼 휴지일 게 뻔해도 손으로 일일이 풀어헤쳐 확인한다.
외출하지 않은 손님 중에는 일부러 속옷 차림으로 있거나, 청소하는 동안 의자에 앉아 빤히 쳐다보는 이도 있다. 그렇다고 손님한테 옷을 입으라거나 쳐다보지 말라고 하지 못한다. 몸과 마음에 와 닿는 불편한 눈길을 참아야 한다. 감정을 그대로 표현해서는 안 된다. 조금이라도 손님을 언짢게 하면 관리자에게 항의(컴플레인)가 들어간다. 나중에 관리자한테서 듣는 문책이 더 큰 스트레스를 준다.
손님이 상식선에서 조금만 신경 쓰면 되는데 그러지 않아 문제가 생겨도 “괜찮습니다, 손님. 제가 할게요. 이게 제 일인데요.”라고 안심시켜야 한다. 노동자는 손님을 위해 정기적으로 서비스교육을 받지만, 손님은 주의사항을 따로 배우지 않는다.
나이든 여성노동자가 밝고 공손하게 건네는 인사도 종종 무시당한다. 답 인사 대신 ‘당신은 청소부’라는 눈빛이 건너온다. 젊은이들이 더 그런다. “자존심 상하지만 내 직업이니까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마음을 달랜다.
잠잘 때 “메이드 카(청소 수레)를 끌고 산 여기저기 하나씩 있는 방을 청소하러 가는 꿈을 꾼다”는 김정숙 씨는 6개월 뒤에 정년퇴직한다. 입사동기 남자들은 대리나 부장으로도 진급했지만, 룸메이드에게는 제도도 기회도 보장되지 않아 “룸메이드로 입사해 룸메이드로 정년퇴직”한다. 말에 억울함이 엿보인다. 그의 감정을 호텔이라는 회사는 들여다 본 적이 있을까.




이주연(가명) 씨는 공항 면세점에서 화장품을 판매하는 파견노동자다. 새벽 6시30분부터 밤 9시30분까지 두 조로 나눠 일한다. 하루 8시간 서서 일한다. 손님이 없어도 서서 대기한다. 매장에는 의자를 두지 않는다.
사람 대하는 일이 좋아 시작한 일, 3년이 지났다. 맡은 화장품은 신제품 발매와 품질개량이 잦아 격월로 교육을 받는다. 손님이 제품을 정확히 알고 잘 선택하게 도우려면 판매자가 전문가여야 한다. 교육과 실습 뒤에도 받아온 자료로 더 공부한다. 그런데 어떤 손님은 판매직 노동자가 그 역할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게 만든다.
“제품 설명을 잘 안 듣고 계속 똑같은 질문을 하거나, 더 알려주고 싶어도 말을 자르셔요. 이유 없이 짜증을 내시는 분들도 있고요. 어떨 때는 사람 이하 취급을 당하는 느낌이에요. 저희가 손님을 도와드리는 일을 하는 건데 그냥 판매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죠. ‘고생하는구나, 열심히 하는구나’ 이렇게 보는 것 같지는 않아요.”
반말을 하는 손님도 있다. 엄마뻘쯤 되면 그래도 참을 만하다. “20대 후반 30대 분들이 반말하면 표정관리가 잘 안 돼요. 순간 뜨끔해요. 겉으로는 안 그런 척 하고 존댓말을 써야 하죠.”

판매직 노동자들은 “손님이 물건을 사러 와도 감사합니다. 보고만 가도 감사합니다. 와서 컴플레인을 걸고 난리를 치고 가도 감사합니다. 산 물건을 취소하러 와도 갈 때는 감사합니다.”라고 해야 한다. 서비스교육에서는 마음으로 응대하라지만 현실에서 늘 그러기는 쉽지 않다.
손님한테서 일방적으로 감정을 혹사당하는 일을 겪으면 잠시 그 자리를 떠나 마음을 추스려야 한다. 그런데 선배나 동료들이 배려해 매장을 벗어나도 막상 쉴 공간이 없다. 이주연 씨가 전에 일한 시내면세점에서도 휴게실이 마땅찮아 계단이나 복도에서 쉬어야 했다. 매출이 늘면 브랜드가 늘고, 직원이 늘고, 손님에 대한 서비스가 늘어난다는데, 직원에 대한 배려는 없어 오히려 힘들어진다.
판매직 노동자의 급여나 복지도 문제다. 그나마 노조가 있어 이주연 씨는 조금씩 희망을 갖는다. 지금까지 없었던 여름휴가비와 감정수당도 꿈꿔본다. 힘들어도 좋아하는 이 일을 계속 하고 싶은 이주연 씨가 손님에게 바라는 한 가지는 “서로 존중”하는 것이다.


★ 박수정 님은 르포작가로 <숨겨진 한국여성의 역사> <내일로 희망을 나르는 사람들> <세계의 꿈꾸는 자들, 그대들은 하나다> 등을 펴냈다.

 

돈을 던져도 욕을 들어도 웃으라 한다 | 글 희정 그림 최호철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많이 드십시오, 고객님.” “하나 더 드시겠습니까? 고객님” “안녕히 가십시오, 고객님.” 하루에 이 말을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한다는 이주선(가명) 씨에게 ‘고객님’이 붙은 모든 말은 노동이다. 그녀는 대형마트 시식코너에서 행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현금영수증 필요하십니까?” “포인트 카드는 있으십니까?” “봉투 필요하십니까?” “영수증 받으십시오.” “안녕히 가십시오, 고객님.” 마트 계산원인 김숙영(가명) 씨도 종일 계산대에 서서 종달새처럼 ‘고객님’을 불러야 한다. 그녀들은 ‘라’ 음정을 유지한 목소리와 웃는 얼굴로 하루 8시간 이상 고객을 응대한다. 고객에게 좋은 하루를 만들어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정작 그녀들의 하루는 편치 않다. 그녀들은 “왜 우리에게 항상 웃으라 하지요?”라고 묻는다.

김숙영 씨는 마트에서 온갖 사람을 접한다. 반말을 하는 손님, 돈을 던지는 손님, 오래 기다리게 했다고 신경질을 내는 손님, 봉투를 무료로 주지 않는다며 욕을 하는 손님. 그런 고객들에게 김숙영 씨가 할 수 있는 대응은 ‘친절하고, 상냥하게’ 뿐이다. 억지웃음을 짓지 않으면, 고객은 불만스러워 한다.
“웃질 않으면 ‘계산원 얼굴이 왜 저러냐’고 사이트(온라인 고객의 소리)에 올리는 사람들도 있대요. 우리가 항상 좋을 수는 없는 거잖아요. 항상 웃으라는데 우리가 무슨 피에로도 아니고.”
마트 계산원 김숙영 씨는 그런 고객들이 불만이다. 시식 행사원 이주선 씨도 고객들에게 억울한 항의를 듣는다.
“(시식용 음식이) 안 익었다고 해도 고객이 ‘익었어. 내놔 봐’ 반말로 해요. ‘고객님 죄송합니다. 아직 덜 익었습니다.’ 그러니까 고객이 ‘왜, 주기 싫어?’ 그래서 내놨어요. 먹어보더니 ‘씨발, 익지도 않은 걸 어디다 주고 지랄이야?’ 욕까지 해요.”
그녀가 할 수 있는 말은 “고객님 죄송합니다. 한 바퀴 돌고 오시면 익혀놓겠습니다” 뿐이다. 그녀도 인간이기에 화가 난다. 울고 싶다. 그럼에도 다정한 음색으로 ‘죄송합니다’를 연신 왼다. 그리고 화장실로 간다. 흐르는 눈물, 찌푸려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다. 관리자들의 눈에 띄면 안 된다.




마트 관리자는 고객과 직원 간의 잘잘못을 가려주지 않는다. ‘모든 잘못은 직원에게 있다. 고객님이 잘못하실 리 없다.’ 이것이 마트의 태도다. 마트에서 고객은 경쟁사에 빼앗겨서는 안 되는 구매자다. 구매자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마트는 직원들이 받은 비인격적 대우에 눈을 감는다. 기업은 고객에게 감동을 주겠다고 큰소리쳤다. 이것은 경쟁의 일환이다. 마트의 말을 믿은 고객은 요구를 한다. 종종 그 요구는 지나치다. ‘모시겠다’는 마트의 말을 들은 고객은 당당하다. ‘모심’을 실제 행하는 직원들은 안중에 없다.
오히려 기업은 기대가 높아진 고객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직원들을 다그친다. 친절을 감시한다. 마트 소속 계열사에서 진행하는 모니터링, 마트 자체의 서비스 평가, 경쟁 제품 관리자들의 감시. 감시의 결과로 재교육과 인사 평가가 기다린다. 재교육이라는 이름하에 몇 시간 동안 같은 멘트, 같은 인사만 하는 모멸도 감수해야 한다. 고용도 위협받는다.
이주선 씨는 고객 항의가 있었다는 이유로 일주일간 시식대를 빼앗겼다. 그녀는 직영직원이 아닌, 식품회사에서 시식 행사와 판매를 위해 마트로 파견한 노동자다. 대부분 대형마트는 파견 노동으로 유지된다. 직영 직원이 아니니, ‘불친절했다’는 주관적인 이유로 한순간 일자리를 잃을 수도 있다. 그네들의 고용은 불안하다. 회사는 친절도 업무라 한다. 당신들의 감정을 소비하는 것도 월급 받는 대가라 말한다.
“여기 사람들이 엄마 나이대이기 때문에, 애들 학원비랑 뭐 이런저런 돈이 필요해서 오는 경우가 많아요. 솔직히 이 나이에 어디 가서 취직한다는 거 힘든 상황이고 하니까, 그래서 시키는 대로 하는 거예요. 내가 싫어도, 내가 마음이 아니더라도.”
그녀들은 고용되기 위해 웃음, 친절, 감동이라는 노동을 한다. 내 마음이 아니더라도. 돌아서서 눈물짓고 가슴을 탕탕 치면서도.


★ 희정 님은 집필노동자로, 〈일다〉 〈프레시안〉 등 인터넷 언론과 〈한겨레21〉에 르포를 싣고 있다.

 

심야쇼핑 안 하기는 어떨까요? | 글 정민정
아침부터 저녁까지 우리 일상을 살펴보면 우리 주변에는 굉장히 많은 서비스 노동자가 있음을 알게 됩니다. 아침 출근길 음료수를 사기 위해 편의점에 가면 서비스 노동자가 환한 미소와 밝은 인사로 우리를 맞이합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가면 식당의 서비스 노동자들이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식사 후 방문한 은행에서도 행원이 친절한 미소로 고객을 응대합니다.
더운 날씨에 시원한 맥주를 한잔 마시러 찾아간 근처 술집 역시 입구에서부터 종업원이 큰 소리로 환영의 말을 합니다. 주말에는 더욱 많은 서비스 노동자를 만날 수 있습니다. 마트에 가도 백화점에 가도 가족과 함께 패밀리레스토랑에 가도 또는 연인과 함께 놀이동산에 가도 그 어느 곳에서든 환한 미소와 친절한 인사로 응대하는 서비스 노동자를 접할 수 있습니다. 그들의 친절은 우리에게 어느덧 익숙한 것이 되어버려 이제는 특별한 감동으로 다가오지 않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민주노총 서비스연맹과 시민사회단체들이 모여 2008년 ‘하루 종일 서서 일하는 서비스 여성노동자에게 의자를’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누구 하나 눈여겨보지 않았던 서비스 노동자의 아픔에 대해 우리 사회에 화두를 던진 것입니다. ‘왜 그들은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가?’라는 의문 말입니다.
늘 웃고 있는 서비스 여성노동자의 다리는 퉁퉁 부어 저녁이면 구두가 맞지 않을 지경이 되어 있었고, 그들의 다리와 발은 하지정맥류, 관절염, 발가락 변형 등으로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의자 캠페인은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안고 출발했습니다. 시민이 서비스 노동자들이 의자에 앉는 것을 동의해주지 않는다면 이 캠페인은 성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의자 캠페인의 부제로 ‘의자는 존중입니다!’를 내세웠습니다.
서비스 노동자에게 의자에 앉을 권리를 보장하라는 말은 우리도 하루 종일 서서 일하면 몸이 아플 수 있는 인간임을 알아달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서비스 노동자는 친절을 제공하는 기계가 아닙니다. 그들 역시 인간이기에 희로애락의 감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고객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명분으로 그들에게는 ‘기쁨’이라는 하나의 감정만이 허용되며, 그들이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친절’ 밖에 없습니다.
‘의자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우리의 우려는 기우일 뿐이었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습니다. 정말 많은 시민이 서서 일하는 서비스 노동자의 아픔에 공감해주셨고, ‘그들이 왜 서 있는지에 대해 이제껏 생각해본 적이 없지만 당연히 그들도 앉을 권리가 있다’고 동의해주셨습니다.
‘의자’는 가구가 아니었습니다. 서비스 노동자에게 의자는 ‘존중’이라는 소중한 가치의 재발견이었습니다. 의자를 통해 서비스 노동자와 고객은 진정한 소통을 시작했습니다. 서비스 노동자를 친절 기계로 인식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그들 역시 존중받아야 할 인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의 이웃이자 가족인 감정 노동자의 미소를 지켜주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요?
하나, 서비스 노동자를 존중하는 마음을 표현해주세요. 백화점에서 친절하게 제품을 설명해주는 서비스 노동자에게 살짝 미소를 보여주세요. 맛있는 음식을 먹고 난 다음에는 “잘 먹었습니다” 라고 이야기해주는 센스 ^^ .
서서 일하는 노동자에게 “앉아서 하셔도 돼요”라는 한마디를 건넬 때 서비스 노동자는 무한감동을 느낀답니다.
둘, 서비스 노동자에게 반말을 하지 말아주세요. 서비스 노동자에게 고객은 그냥 손님이 아닙니다. ‘고객님’이십니다. 그런데 일부 고객님은 서비스 노동자에게 반말과 폭언을 합니다. 폭언을 들은 서비스 노동자는 감정을 추스를 겨를도 없이 바로 다음 고객을 응대해야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서비스 노동자의 마음은 병들어 가게 됩니다.
셋, 늦은 시간에는 대형 유통매장 이용을 줄여주세요. 고객이 찾지 않으면, 백화점·할인점은 더는 심야영업과 연장영업을 하지 않을 거예요. 밤늦게 물건을 사야 할 경우가 생기면 어떻게 하냐고요? 주변을 둘러보시면 환하게 불 밝히고 있는 많은 편의점과 친근한 동네슈퍼 주인의 얼굴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고객의 힘으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서비스노동자의 건강을 지켜주고, 그들이 가족과 함께 따뜻한 저녁 식사를 할 수 있게 해주어요.
밝은 웃음 뒤에서 눈물 흘리고 있는 감정 노동자들의 진짜 미소를 우리 찾아주어요. 서비스 노동자는 이야기합니다. 서비스 노동자와 고객이 행복한 세상은 서로가 존중할 때 만들어진다고….


★ 정민정 님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서비스연맹 여성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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