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40주기, 자본에 맞선 저항과 투쟁

전태일 정신을 어떻게 계승할 것인가?

전태일 열사 40주기, 11월 7일 서울광장에서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린다. 노동기본권쟁취, 노동악법 철폐, 비정규직 문제 해결, G20규탄을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완전한 노동기본권만 쟁취한다면 별도의 노동악법 철폐는 필요 없다. 나아가 비정규직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 비정규직이 존재하지 않을 것임으로. 정규직노동자를 정상적인 인간이라고 하면 비(非)정규직노동자는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런데 자본주의 체제하의 임금노동자는 정규직이라 할지라도 결국 정상적인 인간이 아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자본에 착취당하는 임금노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장의 인식 여부를 떠나 해방을 갈망하는 존재다.

- 전태일 정신은 노동(민중)해방 사상

대학생 친구 한 명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던 노동자 전태일은 단순히 노동법을 이해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자본이 만든 노동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자본의 지배질서에 저항한 것이다. “근로기준법을 지켜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을 불사른 것은 노동법 준수를 넘어 노동해방과 민중해방의 횃불을 치켜든 것이다. 따라서 전태일 정신을 그저 노동조합의 테두리 속에서 노동법과 노동조건의 문제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 당면투쟁이 안 되니까 전태일 평전을 읽고, 전태일 묘소를 참배하고, 전태일 열사 정신계승을 내걸고 노동자대회를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의식과 방향 없이 행사만 치루는 것은 자칫 복고주의에 빠지거나 신파극에 머무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비록 40년 전 전태일의 몸은 불탔지만 그의 정신은 살아있다. 살아 있는 전태일 정신을 이어받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전태일 정신을 이어받을 것인가? 전태일의 사상을 계승하는 일이다. 전태일 사상은 노동자에 대한 사랑과 연대, 조직 속에서 단결과 헌신, 새로운 해방세상을 향한 희망이었다. 해방은 자본주의체제의 억압과 굴종의 사슬을 끊어내는 것이다. 오늘날 금융의 세계화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를 가속화시켰다. 금융‧경제위기가 심화되고 그 위기의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급의 저항이 약화된 틈을 타 자본은 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한다. 그리고 일시적 위기 극복을 통해 자본주의체제를 정비하고 관리한다. 그러나 구조적 공황상태는 지속된다.

- 빛의 속도로 이동하는 금융세계화

오늘날 공황은 산업자본주의시대와는 양상을 달리한다. 화폐의 상품화가 고도로 이루어지는 시대다. 투기적 금융자본의 거품은 마그마가 지구 깊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활화산처럼 분출하여 넘쳐흐르는 형국이다. 연간 총생산(GDP)의 10배에 달한 파생상품은 그 자체로 거품을 만들어낸다. 0.03초 내에 주식이 거래되는 극초단타매매가 성행한다. 뉴욕월가 증권가에서 거래되던 돈 중 1조 달러가 밤이 되면 인터넷망을 타고 14시간 시차가 있는 도쿄시장으로 이동한다. 자본이 빛의 속도로 이동하면서 잠자고 있는 노동자들의 주머니를 털어간다. 전세계 금융거래의 95%가 투기거래다.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 전체 통화량의 3%만이 실물통화(동전과 지폐)고 나머지 97%는 컴퓨터 화면상의 입력 자료로만 존재한다. 금융세계화는 노동과 자본의 계급전쟁이다.

- G20 규탄이 아니라 해체다!

금융투기자본의 중심은 뉴욕월가, 미재무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WB)이고 이들과 결합하고 있는 관리체제(governance)는 G8이었다. 지난 1998년 아이엠에프 외환위기 당시 지적되었던 ‘워싱턴컨센서스’그룹들이다. 2008년 미국 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 경제위기로 확산되자 세계주식회사라 불렸던 G8이 G20으로 확대되었다. 이들이 고삐 풀린 금융투기 망아지를 잡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금융위기의 공범들이다. 지구상 70억 인류가 이들에게 전 세계 금융‧경제위기를 해결하도록 권리를 위임한 바가 없다. 이들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다. 반면에 민중들을 배제한다. 아류인 이명박 정권은 군대도 동원할 수 있는 ‘G20 정상회의 경호 안전특별법’ 발동하고 작년 쌍용차 파업을 폭력적으로 진압한 조현오 경찰청장을 앞세워 음향대포까지 발사하겠다고 한다.

지난 6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열린 제4차 G20 회의는 행사비용으로 12억 달러를 투입했고 시위대 중 900여명을 폭력적으로 연행했다. 밀실에서 열린 회의에서 그들은 금융개혁은커녕 은행세 등 최소한의 조치조차 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agree to disagree). 이번 제5차 회의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과 환율전쟁이 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받아들여 한미FTA를 타결 짓는 기회로 삼으려 한다. 아셈정상회의보다 한EU FTA타결이 중심이고, 11월 13일부터 열리는 요코하마 아펙회의는 WTO 도하개발의제(DDA) 타결을 종용하면서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 건설을 추진하려 한다. 이러한 금융투기자본의 시대에 전태일정신을 계승하려면 당연히 G20을 규탄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반대’를 넘어 해체하라고 외쳐야 한다.

- 전태일 정신은 자본에 맞서 투쟁하는 것

전태일 열사를 부각시켜 일회성 행사로 이벤트화 해서는 안 된다.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는 정신을 계승하려는 당사자나 조직이 그 정신을 담을 그릇을 준비해야 한다. 부패하고 망가진 상태에서는 열사의 사상을 올곧게 이어 받을 수 없다. 자본주의체제를 넘어서는 인간(노동, 민중)해방의 세상을 염원했던 열사의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면서 자본주의체제에 내면화된 모습으로는 가능하지 않다. 자본독재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투쟁하지 않으면서 열사를 맞이할 수 없다. 1987년 이래 대중적인 노동운동이 펼쳐지면서 정권이 다섯 차례 바뀌었다. 노태우정권을 제외하면 지금 정권을 두고 가장 비민주적인 정권이며 자본독재정권이라 부른다. 어떤 경우에는 파쇼정권이라고 몰아붙이기도 한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현재처럼 대응한다면 이명박 정권이 역대정권 중에서 노동자를 가장 적게 구속시킨 (인권?)대통령이 될 지도 모른다.

전태일 열사는 노동운동이 뿌리채 뽑히고 민주노조가 존재하지 않았던 어두운 시대, 자본의 억압에 맞서 몸을 불살랐다. 현실을 탓하기보다 행동으로 저항했다. 전태일정신은 불의에 대한 저항과 투쟁정신이다. 저항하지 않고 투쟁하지 않으면서 전태일 정신을 말하는 것은 위선이다. 권력과 자본이 나쁘다고 말하면서 그 울타리에 안주하면서 자리나 지키는 봉건영주의 모습으로는 전태일 정신을 말하기가 부끄럽다. 조직이나 대중의 상태를 탓하는 순환논법으로 세월만 보내면 해방은 오지 않는다. 자본주의가 스스로의 내재적 위기로 몰락한다 하더라도 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쟁취하지 않는 해방은 존재하지 않는다. 반드시 반동의 역사가 그 변화의 자리를 차지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 안주하는 노동자정치세력화와 권력은 기만이다. 철저하게 이기적이고 자본주의적 삶을 살아가면서 입으로만 외치는 전태일 정신은 부끄러움이다.

(노동전선 정세동향 49호, 201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