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www.workingvoice.net/119/119_issue.asp삼미특수강사건 대법원 판결의 문제점과 과제

이승욱
부산대 법학대학/교수

[2001-12-24]



1. 들어가면서

삼미특수강사건은 삼미특수강에 대한 개별사건이라기보다는 기업변동시 근로관계에 관한 일반적인 준칙을 다투는 사건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시기적으로 볼 때 이 사건은 1996년 말에서 1997년 초에 걸쳐 발생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삼미특수강은 무리한 해외부동산투자, 과도한 차입 등 방만한 경영으로 대규모 적자상태에 빠져 있었고, 그 활로를 회사의 핵심부문의 매각에서 찾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 사건 계약이 체결된 직후에 우리 나라는 이른바 IMF사태로 불리는 국가적 위기상황에 빠지게 되었다. IMF사태는 수많은 기업의 도산을 초래하였고 도산을 회피하기 위해 해외에 자산을 매각하지 않으면 안 되는 초유의 사태를 유발하였다. 삼미특수강사건은 단지 지방 소도시의 한 공장에서 벌어진 사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IMF사태로 이어지는 국가적 위기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은 아닌 듯하다. 삼미특수강사건의 궁극적 원인이나 전개과정은 IMF사태 하에서 상당수의 다른 기업들도 답습하게 되었고 현재에도 답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기적으로 다른 기업에 앞서 부득이한 기업재편을 할 수밖에 없었던 삼미특수강사건은 본의 아니게 기업재편이 발생할 때 고용관계의 규율에 대하여 바로미터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따라서 사회의 눈과 귀가 삼미특수강사건의 처리에 집중하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우리 사회 나아가 국제사회에도 큰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이 사건은, 이 사건 계약서가 체결된 1997년 2월 17일 이후 4년여 세월이 흐르고, 서울고등법원의 해고무효확인판결이 내려진 1999년 1월 22일 이후 약2년 반이 경과한 지난 7월 27일 토요일 오전에 대법원에서 종결되었다. 이 판결에서 대법원은, 고용승계를 권유하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과 같은 행정부나 입법부의 간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하고 있고, 추기경이나 목사 등 종교세력으로부터도 분리되어 있으며, 노사정위원회에서의 합의나 노정간의 합의를 이끌어낸 사회적 세력으로부터도, ILO 이사회 권고와 같은 국제사회의 압력으로부터도 완전히 자유롭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입증하였다. 그렇지만 아쉽게도 대법원은 영업양도에 있어서 근로관계와 관련하여 그 동안 공들여 축적하여 왔던 자신의 자랑스러운 전통으로부터도 벗어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이하에서는 영업양도와 관련한 명문의 노동법적인 규율이 없는 상황에서 기존의 판례법리를 간단히 개관한 뒤에 삼미특수강 사건의 특수성과 핵심적 쟁점을 짚어보고 이 사건 판결의 문제점과 의의를 살펴보기로 한다. 이후의 노동조합의 대응방향과 향후 과제에 대해서도 언급하고자 한다.


2. 영업양도에 관한 판례의 기존 입장과 문제점

종래에 대법원은 영업양도 하에서 근로관계에 관한 법적 규율에 대하여 일관된 입장을 견지하여 왔다. 기존의 대법원 판례를 간단하게 요약하면, 첫째 영업양도가 이루어질 경우 영업양도 당사자간에 근로관계를 승계한다는 명문의 합의가 있는 경우나 근로관계 승계 여부에 대하여 아무런 합의를 하지 않은 경우에는 근로관계는 양수인에게 포괄적으로 승계 된다. 둘째, 영업양도계약을 하면서 양도계약당사자간에 일부 근로자를 승계의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하는 합의를 하는 경우에는 그 합의는 원칙적으로 유효하지만 그것은 실질적으로 해고와 다름이 없기 때문에 해고의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영업양도 자체만을 사유로 하여 근로자를 승계대상에서 배제, 즉 해고하는 것은 정당한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판례 입장은, 영업양도에서 양수인이 근로관계를 포괄적으로 승계하지 않는다면, 그 사업은 양수인에게서 동일성을 가지고 계속 유지·운영됨에도 불구하고 영업을 양수인에게 양도한 양도기업에서는 더 이상 일자리가 제공될 수 없기 때문에 근로자들이 해고될 수밖에 없다는 불합리한 결과를 피하고자 하는 데에 기본적인 취지가 있다. 기업변동과 관련한 노동법상 명문의 규정이 없는 상황하에서 기존의 판례 법리는 영업양도에서 근로관계의 포괄승계법리를 형성함으로써 법의 공백상태를 보충하였던 것이다. 노동법상 해고제한법리는 결국 근로관계의 존속보호를 통하여 근로자의 생존권을 확보하는 데 그 기본적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사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상황만이 아니라 사업조직을 재편하는 상황에도 적용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기업조직재편에 근로자의 참여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어 있지 않은 우리 나라의 법현실 속에서 기업조직재편시의 근로관계는 취약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히려 더욱 엄격한 해고제한법리의 적용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판례 입장은 한가지 전제가 있다. 근로관계가 양수인에게 포괄적으로 승계 되기 위해서는 먼저 영업양도가 존재하여야 한다. 근로관계의 포괄승계라는 법적 효과는 영업양도의 존재라는 요건을 충족할 때에만 발생할 수 있는 것이다. 삼미특수강사건은 결국 어떠한 경우에 근로관계의 승계를 초래하는 영업양도가 존재하는지를 둘러싸고 다투어진 사안이다. 사안 자체는 그다지 복잡한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몇 건의 사례가 이미 대법원에서 다투어진 바 있다. 대법원은 이들 사건에서 일반론으로서는 일관하여 “영업의 양도라 함은 일정한 영업목적에 의하여 조직화된 업체 즉 물적, 인적 조직을 그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일체로서 이전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여기서 영업의 동일성 여부는 일반 사회관념에 의하여 결정되어져야 할 사실인정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문제의 행위(양도계약관계)가 영업의 양도로 인정되느냐 안 되느냐는 단지 어떠한 영업재산이 어느 정도로 이전되어 있는가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종래의 영업조직이 유지되어 그 조직이 전부 또는 중요한 일부로서 기능할 수 있는가에 의하여 결정되어야 하는 것이므로, 예컨대 영업재산의 전부를 양도했어도 그 조직을 해체하여 양도했다면 영업의 양도는 되지 않는 반면에 그 일부를 유보한 채 영업시설을 양도했어도 그 양도한 부분만으로도 종래의 조직이 유지되어 있다고 사회관념상 인정되면 그것을 영업의 양도라 볼 것”이라고 하고 있다. 삼미특수강사건 판결문에도 똑같은 문장이 사용되고 있다. 따라서 이번 대법원 판결도 기존의 연장선상에서 내려진 판결로서 볼 여지도 있다.

여기에서 핵심적인 기준은 첫째 영업의 동일성 여부는 ‘일반 사회관념’에 의해 결정되어야 하는 것으로서, 당사자의 주관적 의사가 아니라 객관적으로 결정된다는 점, 둘째 그 판단기준은 종래의 영업조직이 유지되고 그 조직이 기능할 수 있는지 여부에 따라서 결정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사업의 어떠한 요소가 어느 정도 이전되어야 하는지는 결국 법관의 세계관이나 가치관에 따라 결정될 수밖에 없는 점은 부득이한 결과이다. 현상의 다양한 사실관계에 완전히 부합하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기준을 사전에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은 입법기술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그 동안 구체적인 여러 사건에서 상호 모순적으로 보이는 판단을 내려왔던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동일한 요소가 어떤 사건에서는 영업양도를 인정하는 기준으로 제시되고 다른 사건에서는 영업양도를 부정하는 기준으로 제시되는 등 일견 보기에 일관성이 없는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이것을 두고 대법원의 일관성 없음만을 지적하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 각 사건에서 문제된 사업의 성질이나 규모가 다르기 때문에 그러한 혼란이 부득이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다만 아쉬운 점은 다른 나라의 최고법원처럼 혼란스러운 사실관계의 와중에서도 조금 더 세분화된 정치한 기준을 판례에 의해 제시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예컨대 당해 사업의 운영에 없으면 안 되는 본질적 사업수단을 사업의 규모나 성질에 따라서 구체적으로 특정하고 그것이 양도되면 영업양도의 인정에 적극적으로 고려한다든지 하는 노력이 우리 판례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런 노력은 이번 삼미특수강사건 대법원 판결에서도 여전히 결여되어 있다. 영업양도시 근로관계에 관한 명문의 규율을 결여하고 있는 우리 나라에서 판례법리가 차지하는 비중이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하여도 지나치지 않다. 판례가 명확한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면 관련 당사자에게 예측 불가능한 상황만을 창출하여 혼란을 야기한다. 이러한 혼란은 생존권이 달려 있는 근로자에게는 치명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3. 삼미특수강 사건의 특수성

이 점은 삼미특수강사건의 특수성과 맞물려 증폭되고 있다. 삼미특수강사건에서 특이한 점은 양도당사자인 삼미특수강과 창원특수강이 계약서에서 명시적으로 근로관계의 승계를 일체 부정하였다는 것이다. 영업양도의 개념이 문제된 이전의 사건에서는 고용승계배제에 관한 양도당사자간의 의사가 명시적으로 사전에 밝혀진 상태에서 영업양도 해당성 여부가 다투어진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삼미특수강사건에서는 당사자들이 영업양도로서의 성격도 명시적으로 부정하고 있을 뿐 아니라, 고용승계도 명시적으로 부정하여 근로관계 승계에 대한 거부감을 이중적 장치에 의해 명백하게 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유사한 사건과 차이가 있다. 고용승계를 주장하기 위해서 근로자측은 이 이중의 장치를 돌파하여야 한다는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근로자측은 우선, 구체적인 영업양도의 인정기준을 제시하는 것을 판례가 주저하는 틈을 이용하여 영업양도로서의 존재를 양도계약당사자가 의도적으로 부정하고 있는 것에 대해 영업양도의 존재를 근로자측이 적극적으로 입증하여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그리고 동시에 영업양도의 개념에 대한 판례법리의 구성을 이용하여 근로관계 승계를 완전히 배제함으로써 의식적으로 인적 동일성을 훼손하는 사용자의 시도에 대해서도 판례법리의 논리적 오류의 위험을 극복하여야 하는 것이다.

앞에서 보았듯이 판례에 따르면 영업양도로 인정되기 위해서는 물적 조직과 인적 조직이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일체로서 이전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 논리는 인적 조직을 승계하지 않으면 물적 조직을 승계하더라도 동일성을 유지한 영업양도로 인정될 수 없고, 영업양도로 인정될 수 없기 때문에 근로관계를 승계할 수 없다는 동어반복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삼미특수강사건의 양도계약당사자들은 이러한 난점을 치밀하게 파악하여 양도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보인다. 위의 논리의 부당성을 여기에서 자세히 논할 수는 없지만 인적 동일성의 구비는 영업양도의 법적 효과와도 관련이 되어 있기 때문에 물적 동일성과 인적 동일성은 동일한 차원에서 논의될 수 없다는 것만 일단 지적하기로 하자. 다만 분명히 하여야 할 것은 영업양도에서 근로관계의 포괄승계를 인정하는 취지가 해고제한법리의 형해화(形骸化) 내지 잠탈(潛脫)을 방지하고자 하는 데에 있기 때문에 근로관계의 승계 여부에 대한 결정이 양도계약당사자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좌우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이런 관점에서 삼미특수강 사건의 대법원 판결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4. 판결에 대한 구체적 검토

대법원도 판결문에서 명확히 인정하고 있듯이 양도당사자들이 근로관계의 승계를 부정한 이유는, 삼미특수강측에서는 “공장의 자산과 함께 인적조직인 종업원들을 포괄하여 양도하는 방식으로는 양수희망자가 없어 봉강·강관 부문의 사업정리가 불가능하였으므로 결국 이 사건 공장의 자산만을 양도하기로 하고, 그에 따라 이 사건 자산매매계약의 체결에 이르게”되었고, 다른 한편 포항제철측, 즉 창원특수강측에서는 “자산 이외에 인적조직인 종업원들의 대부분을 함께 인수하는 영업양수의 방식으로는 아무리 생산기술을 향상시키고 경영환경을 개선하더라도 건전한 기업으로 육성시킬 가능성이 없다는 판단”에 기인한다.

결국 이 사건에서 삼미특수강측은 창원특수강측으로부터 근로관계승계를 배제하는 계약, 즉 근로자를 해고시키는 계약을 부득이하게 강요당하였거나 혹은 삼미특수강과 창원특수강이 서로 계획적으로 근로자를 해고하는 합의를 한 것이다. 어떤 경우이든 이 사건의 원고인 창원특수강은 해고제한법리를 잠탈할 의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대법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논거를 들어 영업양도로서의 성격을 부정하고 있다. 사용자의 해고제한법리를 잠탈할 의사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사업양도로서의 성격을 부정하기 위해서는 좀더 치밀하고 설득력있는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 대법원 판결에서는 “종전 삼미에서의 근로조건이나 직급상태를 그대로 유지하지 않고 3개월간의 수습기간을 거쳐 원고 고유의 직급 및 급여체계, 근무시간 등에 따라 재배치”하였다는 이유로 종전 삼미특수강의 인적 조직이 완전히 해체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원심인 서울고법의 사실인정에 따르면 “원고의 직원들 중 삼미 출신 이외의 직원은 포항종합제철 등 재직경력을 가진 53명에 불과하고 그들은 임직원 또는 노무관리직을 맡고 있을 뿐이다”. 실질적인 생산에 종사하는 인력은 모두 종전 삼미특수강에서 일하던 근로자로 구성되어 있는 점을 볼 때 대법원의 판단은 지나치게 형식적인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사업을 인수한 자가 자신의 인사체계에 따라서 직급이나 급여체계를 부여하는 것은 그것이 합병이든 영업양도이든 주식의 취득에 의한 지배주주의 변경이든 당연하게 예상되는 것이다. 인적 조직이 유지되고 있는지 여부는 직급, 급여체계가 형식적으로 유지되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당해 인적 조직이 어떠한 생산목적을 위해 이용되고 있는지에 따라서 실질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 이 사건에서 특수강을 생산하는 기존의 인적 조직은 그대로 유지되었음이 분명하다.

뿐만 아니라 대법원은, “봉강사업부문에 대하여는 공급과잉으로 인한 수익성 감소로 장기적으로는 폐업하고 나머지 품목인 선재 및 빌레트(billet) 사업부문을 주력사업으로 하기로 방침을 정하여 1996년말 기준으로 전체의 59.8%이던 봉강 생산량을 1998년 9월말 기준으로는 11.3%로 대폭 축소하는 등 생산전략을 크게 바꾸었고, 이에 따라 변화된 생산 패턴에 맞추어 포항제철과의 기술교류를 통하여 새로운 기술을 도입 품질을 향상시킨 사실”도 근거로 제시하고 있으나, 이것도 타당한 판단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이 사건 양도가 이루어진 날로부터 2년이 경과한 시기에서 사후에 행해진 양수인의 생산과정의 변화를 가지고 영업양도의 해당성 여부의 판단요소로 삼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대법원과 같이 판단한다면 양수인의 주관적 의사에 따라서 얼마든지 영업의 동일성이 변경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해 사업이 영업의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양도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시점은 영업양도의 효력이 발생한 시점이어야 한다. 대법원이 인정하듯이 영업양도의 시점과 그 이후에도 창원특수강이 “사업목적(생산품목)에 있어서도… 삼미로부터 인수한 자산을 그대로 사용하여 특수강을 생산하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강조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이 사건의 진행과정을 보면 대법원의 판단에 얼마나 무리가 있는지를 잘 알 수 있다.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창원특수강이 설립된 것은 1996년 12월 18일 포철과 삼미특수강이 봉강 및 강관 부문 매각에 대한 의향서를 교환하고 난 이후인 1997년 2월 14일이고, 3일 뒤인 2월 17일에 삼미특수강과 창원특수강이 이 사건 계약을 체결하였다. 창원특수강이 자산에 대한 실사와 인수절차를 완료한 것은 3월말까지이고, 창원특수강의 생산은 4월 1일부터 개시되었다. 그리고 종업원에 대한 채용모집접수가 완료된 시점은 3월 22일이다. 대법원 판결에 의하면 창원특수강은 3월 22일부터 4월 1일 사이에 모든 인적 구성을 재조직한 후 포항제철의 신기술을 지원받아 종업원을 교육시킨 후 생산공정에 투입하여 4월 1일부터 생산에 착수하였다는 의미가 된다. 창원특수강은 종래부터 존재하였던 기업도 아니고 삼미특수강으로부터 넘겨받은 시설에 의해서 종전의 근로자만으로 생산하고 있다는 점을 같이 고려하면, 이 사건 양도가 “종래의 영업조직이 유지되어 그 조직이 전부 또는 중요한 일부로서 기능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도저히 현실적으로 그러한 생산의 개시는 불가능하다. 이 사건에서 관건은 이 사건 양도가 있기 이전이나 이후에도 같은 장소에서 같은 기계설비를 이용하여 같은 근로자들이 같은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이외에 채무가 승계되지 않았다든지 거래처를 새로이 개척하였다든지 주문관계를 인수하지 않았다든지 하는 것은 부수적인 요소에 불과하다.


5. 판결의 의의와 노동조합의 대응

삼미특수강사건의 대법원 판결로 인하여 고용의 보장이라는 노동법의 기본적 이념 하에서 객관적인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할 해고제한법리가 사용자의 주관적 의사에 의해 침해당할 수 있는 여지를 허용하였다. 원칙에 대한 훼손은 아무리 적은 것이라 할지라도 결국은 댐의 구멍처럼 원칙 자체를 붕괴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에 신중하여야 한다. 특히 명문의 규정이 없이 판례법리에 의해 사후통제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대법원은 기존의 판례입장과 사실상 배치되는 이번 판결을 함으로써 판례법리를 뿌리에서부터 뒤흔드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 판결의 영향이 어디에까지 미칠 것인지 상당히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근로자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 정리해고에 관한 명문의 규율이 근로기준법에 엄연히 존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인원의 정리는 정리해고의 요건과 절차에 따라서 이루어져야 한다. 자산매매계약으로 정리해고의 번거로움과 어려움을 피할 수 있다면 어느 누가 정리해고의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할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사건 대법원 판례는 정도(正道) 말고도 손쉬운 샛길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그 길을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이런 상황하에서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단체교섭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합병이나 회사분할 또는 영업양도와 같은 기업변동의 움직임이 포착되면 적극적으로 단체교섭을 요구하여야 한다. 기업조직의 변동은 주주총회의 특별결의사항이자 중요한 기업정책적 결정으로서 이른바 경영권에 속하기 때문에 단체교섭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할 수도 있으나, 삼미특수강사건은 이러한 경영권에 속하는 조치도 근로관계, 특히 그 존속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기업재편과 관련한 단체교섭에서는 교섭시기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회사의 기업재편방침결정 후 신속하게 적어도 수정 변경 등이 가능한 시기에 교섭이 개시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평소에 기업의 경영방침에 관한 정보를 일상적으로 수집 획득 수 있도록 경영정보에 관하여 노사협의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단체협약 등에 의한 정보공개에 관한 룰을 설정하여 두는 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 영업양도 등 기업재편의 움직임이 현실화되면, 노동조합은 사용자에 대하여 기업재편을 하여야 할 경영상의 필요성,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할 것을 요구하고 그 필요성을 입증하는 경영자료를 제시할 것을 요구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기업재편의 절차 내지 과정, 기업재편이 근로조건이나 고용에 미치는 영향, 구체적으로는 근로조건이 유지되는지 인하되는지 여부, 고용승계가 이루어지는지 여부, 고용승계의 범위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교섭하여야 한다. 그리고 기업재편 이후 당해 기업만이 아니라 상대 기업의 경영전망, 근로조건 등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자료를 요구하면서 교섭할 필요가 있다.

6. 입법의 필요성

이 판결로 인해 더 이상 사업변동과 근로관계에 관한 규율을 판례법리에만 맡길 수 없다는 인식이 더욱 절박하게 되었다. 근로자의 고용보장은 물론이고, 사용자에 대해서도 기업조직재편과 관련하여 법적으로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벗어나 예측가능한 사업환경을 구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명문의 규율은 불가피하다. 더욱이 1998년 상법의 개정에 의해 회사의 분할제도가 도입되고 회사의 분할이 실제로 전개되고 있는 상황에서는 시급하게 기업변동과 관련한 노동법상의 규율을 마련하여야 한다. 회사의 분할과 관련하여서는 해석론으로는 도저히 대처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들이 포진하고 있다. 이 판결을 계기로 기업변동의 일반에 대해 근로관계의 규율에 관한 입법의 움직임이 가속화되기만을 기대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