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1년 돌아보기]속내 복잡한 MB의 손익계산

- MB의 3.1절 경축사에서 천안함이 빠진 이유 -

3월 26일이면 천안함 사건이 발생한지 1년이 된다. 지난 해 3월 26일 이후 천안함은 남북 관계에서 제1의 논쟁거리였다. 지난 해 11월 발생한 연평도 사건 역시 천안함 사건으로 꼬인 남북관계 악화의 극단적 결과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 2월 개최되었던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도 단연 천안함이 핵심이었다. 남측은 ‘선 천안함’ 즉 천안함 피격에 대한 북측의 사과 없이는 남북 대화는 한발도 진전할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결국 남북군사실무회담은 결렬되었다.

지난 1년동안 천안함이 남북 관계의 모든 것이 집어삼켰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천안함의 진실은 묻히고 말았다. 설령 그것이 천암함의 의혹을 제기하는 측이건 천안함 피격에 대한 북측의 책임을 제기하는 측이건, 천안함 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주장은 이제 현실성을 잃고 말았다.

이제 필요한 것은 천안함을 우회하는 것이다. 그것이 천안함 사건 발생 1년이 경과한 오늘의 숙제이다. 한반도의 평화를 말한다면 말이다. 그같은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3.1절 경축사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천안함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천안함을 우회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일말의 기대를 갖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속단하기는 이르다. 이명박 대통령의 오락가락 발언이 어디 이번 한번 뿐인가. 좀 더 지켜봐야 한다. 그런데 북미 사이에 훈풍이 불고 있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이건 좀 더 큰 기대를 갖게 한다. 북미 사이의 훈풍이 오락가락 하는 MB의 대북정책을 좀 더 전향적으로 만들 수 있는 효과까지 감안하면 북미 훈풍에 거는 기대는 더욱 크다.

이명박 정부에게 천안함은 꽃놀이패였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11월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꽃놀이패였던 천안함이 이명박 정부에게 뜨거운 감자가 되었다. 삼키기에는 뜨겁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감자 말이다. 꽃놀이패였던 천안함이 뜨거운 감자가 되어 이명박 정부에게 돌아왔다.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을 우회할 것인가. 혹은 이명박 정부로 하여금 천안함을 우회하기로 하는 외부적 힘이 작동할 것인가. 바로 이 점이 2011년 3월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는 키 포인트라 할 수 있다.

MB에게 꽃놀이패였던 천안함

천안함 사건이 발생하기 직전까지 한반도에 훈풍이 불고 있었다. 중국은 북측과 협의한 후 ‘북미 추가적 양자회담 →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 → 6자회담 본회담 개최’라는 3단계 해법을 제시한 상황이었고, 미국이 그에 동의하여 2차 보즈워스-김계관 회동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2차 북미양자회담이 6자회담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전제를 달고 한국 정부에 대한 설득에도 성공했다. 북미양자회담의 기술적인 어려움을 제공했던 김계관 북측 외무성 부상의 비자 문제도 해결되었다. 중국이 제안한 6자회담 3단계 해법의 첫단계가 시작되려 하던 순간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3월 26일 천안함이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점이 절묘했다. 6자회담이 재개되려는 시점에 6자회담은 말할 필요도 없고 남북 관계도 침몰시킬 수 있는 메가톤급 뇌관이 폭발한 것이다.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국방부에서는 연일 ‘북한의 소행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초기 인식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배를 만들어봐서 아는데 파도에도 그리될 수 있다”는 4월 2일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 역시 같은 날 국회에서 김태영 국방부장관의 ‘북한 소행’ 발언에 대해 “답변이 ‘어뢰’ 쪽으로 기우는 것 같은 감을 느꼈다”,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다고 말씀해 달라”는 소위 VIP 메모 등이 대표적 사례이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였다. 3월 29일 미국무부는 “내가 알기로는 그것(북측의 개입)이 사고 원인이라고 믿거나 우려할 이유는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나 4월 중순을 거치면서 분위기가 바뀌게 된다.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나면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유엔안보리에 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4월 18일 유명환 외교부장관), “(북한 소행이라는) 물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4월 19일 김태영 국방부장관), “바로 가까이에 북한이, 가장 호전적인 세력이 있다는 것을 한번 깨닫는 기회가 되면 희생된 사람에 대한 보답도 될 것”(4월 21일 이명박 대통령)이라는 발언들이 이어졌다.

한국 정부의 이같은 기류 변화 속에서 미국의 입장도 바뀌어 갔다. 4월 26일 커트 캠벨 차관보는 “천안함 사건의 상황 진전에 따라 중국이 책임있는 역할을 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함으로써 MB 정부와의 협력을 강화하고 있음을 시사했고, 그같은 기류를 감지했음인지 보즈워스 대북특별대표는 4월 23일 “우리는 단기적으로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며 한반도 정세 진전의 어려움을 토로한 바 있다.

결정적인 계기는 4월 25일이었다. 정부는 천안함 희생자들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했다. 상훈법 13조에 의하면 무공훈장은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 하에서 전투에 참가하여 뚜렷한 무공을 세운 자에게 수요”한다. 천안함 합동조사단의 발표가 나오기 전에 천안함 희생자들을 전사자로 규정한 것이다. 결국 4월 25일 화랑무공훈장의 수여는 합동조사단과 정부 관료들에게 ‘천안함이 전투 중에 침몰했다’는 증거를 찾으라는 강력한 주문이 되었다. 따라서 5월 25일 합조단 조사 발표는 이미 4월 25일로 그 내용이 정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월 중하순을 거치면서 천안함 사건은 명실상부하게 한반도 정세의 뇌관이자 핵심적인 사안이 되었다. 유엔 안보리에서 논의가 시작되었고, 북측의 격한 반응이 이어졌다. 합조단이 북측 소행으로 내린 근거에 대한 상식적인 혹은 과학적인 문제제기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문제제기를 했던 사람들은 고발조치를 당하게 되었고, 참여연대 같은 곳은 거의 ‘이적단체’로 규정되었다. 천안함은 반북대결정책으로 일관했던 이명박 정부에게 꽃놀이패였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이 꽃놀이패를 휘두르며 북측을 국제사회에서 고립시키고 국내에서는 자신의 반북대결정책의 정당성을 확산시키기 위해 주력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5월 24일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였다. 담화문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북한의 기습적인 어뢰 공격”으로 천안함이 침몰되었다며, 북측이 “앞으로 우리의 영해, 영공, 영토를 무력침범한다면 즉각 자위권을 발동”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부메랑으로 돌아온 천안함, 몽니로 버티는 MB 정부

그러나 이것이 이명박 정부에게는 패착이었다. 5월 24일 이명박이 천안함 사건을 계기로 던진 대북강경정책은 6월 지방선거에서 부메랑이 되어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을 타격했다. 전쟁 위기를 감지한 유권자들은 대북강경론을 강조하는 한나라당보다 한반도평화를 역설한 야권에게 더 많은 표를 주었다.

7월에는 천안함 관련 유엔 의장성명이 채택되었다. 한미 양국이 호기있게 천안함 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제기했는데, 결과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의장성명에는 비록 ‘공격’과 ‘규탄한다’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지 않지만 천안함 격침 대상으로서 ‘북한(DPRK)’이 명시되지 않았다. 성명은 9항에서 “한반도와 동북아 전체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는 것”의 중요성을 언급했고, 10항에서는 “정전협정의 완전한 준수를 촉구하고, 분쟁을 회피하며 상황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적절한 경로를 통해 직접 대화와 협상을 가급적 조속히 재개하기 위해 평화적 수단으로 한반도의 현안들을 해결할 것을 권장”했다.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이라는 의장성명의 문구는 이명박 대통령의 5.24 담화문과 정면으로 대치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의장성명은 북측을 규탄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 아니라 한반도에서 고조되는 무력충돌을 방지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자위권 발동을 운운하며 전쟁 불사를 외쳤던 이명박 정부의 대북강경정책에 족쇄를 채우는 효과가 더 컸다.

이명박 정부로서는 북측과의 대화에 착수함으로서 의장성명을 준수하는 정책으로 전환할 것인가 아니면 기존의 강경정책을 고수할 것인가의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후자를 선택했다. 아마도 자신감의 표현이었을 것이다. 또한 애써 확보된 꽃놀이패를 던지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오바마 행정부가 한국 정부의 뜻에 반하는 대북 대화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을 것이다.

사실 유엔안보리 의장 성명 채택 이후 미국은 대북 접근을 모색했던 것으로 보인다. 5월 북측이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의 방북을 요청한 바 있었는데, 천안함 국면이 한창이던 당시 미 행정부는 한국 정부의 반대 등을 이유로 리처드슨의 방북을 보류하고 있었다. 그러던 미 행정부가 7월에 들어 리처드슨의 방북을 추진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태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 고위 인사들의 방북은 시기 등을 포함해서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는 외교통상부 논평을 통해 리처드슨 방북을 공식적으로 반대했다. “북한이 먼저 국제사회에 보다 책임있는 태도와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천안함을 모든 사태 진전의 전제로 삼은 것이다. 6자회담도, 남북관계도, 북미양자대화도 천안함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몽니가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높아지는 파고, 결국 쓰나미 되다

MB의 천안함 몽니가 시작되면서 한반도 긴장의 파고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8월 3일 “강력한 물리적 대응타격으로 진압할 것”이라는 전선서부지구사령부 명의의 통고문, 8월 7일 “우리의 경고는 결코 빈말이 아니다”노동신문의 기사에도 불구하고 한국군 단독으로 대잠수함 훈련이 시작되었다. 훈련이 진행되던 시기에는 이렇다할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훈련이 종료되고 30분이 경과한 시점이었던 8월 9일 오후 5시 30분부터 북측의 해안포 발사가 시작되었다. 6시 14분까지 130여발이 발사되었다. 북측이 훈련 도중이 아닌 훈련 종료 직후 해안포 대응 사격을 한 이유는 명백하다. 당장 긴장을 고조시키지는 않겠다는 의사표현이다. 유엔안보리 의장 성명 채택 이후 비록 MB의 몽니로 인해 큰 진척은 없지만 현재의 대화 모색 분위기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측의 행동이 보여주는 메시지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해안포 130발 중 10여 발이 NLL 이남에 탄착되었다. 8월 10일 합참 관계자는 “북한이 어제 백령도 북방 해상으로 10여발의 해안포를 발사”했으며 “NLL 남쪽으로 1~2km 지점에 탄착”되었다고 확인했다. 북측의 해안포가 NLL을 넘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는 5.24 이명박 대통령이 언급했던 ‘자위권’을 발동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북미 대화나 남북 대화가 계속 진전을 보지 못하고 대북적대적인 군사훈련이 지속될 경우 보다 수위 높은 군사적 대응을 할 수 있다는 명백한 ‘경고’ 메시지였다. 그러나 한미 양국은 특히 이명박 정부는 이같은 메시지를 읽지 못했거나 애써 무시했다. 여전히 대화 없는 대북강경정책으로 일관했다.

북측은 8월 해안포 발사 이후에 대남 대화공세를 강화했다. ‘억류’시켰던 대승호 선원들을 송환하였고, 이산가족 상봉을 제의했다.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당국간 회담도 제의했다. 대단히 파격적인 행보였다. 이명박 정부가 ‘선 천안함 사과’를 요구하며 대화를 거부하자 북측은 민화협 라인을 통해 남북관계 개선을 모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이명박 정부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

북측의 대남 대화 공세가 ‘천안함’에 발목잡혀 더 이상 진전을 보지 못하던 순간과 북측이 미국의 핵전문가들을 불러 핵시설을 공개했던 시점이 11월 초중순으로 정확하게 일치한다. 자세한 의사결정 과정은 모르겠지만 ‘선 남북대화, 후 북미대화(6자회담)’이라는 수순을 통해 대화 분위기를 연출해보려는 시도가 실패하자 북측은 핵시설을 공개했던 것이다.

대화가 되었건, 대결이 되었건 상대방을 남측에서 미국측으로 변경한 것이다. 그리고 11월 23일 북측은 연평도를 포격했다. 지난 해 8월 해안포를 NLL 이남으로까지 발사하면서 보여주었던 ‘경고’를 현실화시킨 것이다. 11월 23일 당시 한국군의 포사격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북측의 연평도 포사격은 미국을 호명한 것이었다. 한반도이 취약한 고리인 정전체제를 강력하게 흔듦으로써 미국을 교전과 대화 중 어느 행동으로건 이끌어내고자 하는 의도였다. 특히 연평도를 포격함으로써 한반도에 전쟁이냐 평화냐 두 개의 선택지만 존재한다는 점을 부각시키고자 했을 것이다. 따라서 북측의 연평도 포격 사건은 기다림의 전략으로 상징되는 MB의 분단관리정책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이었고,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었던 선의의 무시 정책의 파산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북측의 연평도 포격 사건은 그 자체로 정전협정을 위반한 ‘군사도발’임은 명백하다. 비록 군사시설 내에 존재했지만 민간인이 희생되었다는 점에서 북측의 공격 행위는 비판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 행동을 비판하는 것과 그 행동의 동기와 배경을 가려보는 지혜는 필요하다. 북측의 연평도 포격 행위에는 어떤 식으로건 막혀있는 한반도의 정체 상황을 대화 상황으로 바꾸어보고자 하는 ‘북한식 몸부림’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하튼 MB의 천안함 몽니로 긴장의 파고가 올라가던 한반도에 연평도 포격이라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쓰나미가 들이닥쳤던 것이다. 이 쓰나미가 전쟁 위기를 해소하는 역할을 할지, 평화를 파괴하고 전쟁을 불러오는 역할을 할지는 미국의 대응 여하에 달려 있었다.

연평도 포격의 역설(逆說), 미중 정상의 역설(力說)

역설적이게도 연평도 포격이라는 ‘군사 도발’은 북미 대화의 단초를 마련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빌 리처드슨 뉴 멕시코 주지사가 방북을 했다. 물론 공식적으로는 개인방문이었다. 그러나 2008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 당시 백악관과 미 국무부의 사전 조율 속에서 진행되었던 것처럼 리처드슨 주지사의 방북 역시 미 행정부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었다. 특히 이미 두 차례의 방북 시도가 있었으나 한국 정부의 강력한 반발로 리처드슨의 방북이 무산되었던 점을 감안하면 리처드슨의 방북은 미 국무부의 승인 아래 진행되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실제 미 국무부는 방북 전과 후에 리처드슨을 만나 많은 내용을 공유한 바 있다.

2010년 12월 20일은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한반도 정국에서 평화적 해결로의 진입 전망이 보였던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그날 오전 북측과 리처드슨 주지사은 북측의 국제원자력기구 사찰단의 복귀와 사용 후 연료봉의 해외 판매 등에 대해 합의를 했다. 북미 사이에 협상의 단초가 마련된 것이다. 그리고 그날 오후 남측에서 진행했던 군사훈련에 북측은 군사적 대응을 하지 않았다. 북측은 ‘천하비겁쟁이들의 유치한 불장난에 지나지 않아 일일이 대응할 가치를 느끼지 못했다’며 대응자제 이유를 밝혔다. 남측 정부는 ‘우리가 세게 나가면 북한은 항상 꼬리를 내린다’며 북측의 대응자제 이유를 설명했다.

당시 한국군의 훈련이 북측의 주장대로 ‘천하비겁쟁이들의 유치한 불장난’이었는지 여부는 파악하기도 어렵고 그것을 파악하는 것이 그다지 중요하지는 않다. 다만 북측은 빌 리처드슨의 방북을 성사시켰고 그와 핵관련 중요한 내용을 합의함으로써 11월 23일 연평도 포격사건을 일으킨 목적을 달성했다. 북측은 미국을 호명했고, 미국은 그 호명을 받아 리처드슨을 보냈고 리처드슨을 통해 북측은 미국에게 협상안을 던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측으로서는 12월 20일 포사격훈련에 굳이 대응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다. 당시 훈련의 핵심 전력이었던 K-9 자주포 12문 중 1문 만이 훈련에 참가했고 4발을 발사했다. 또한 수격수역이 변경되었다. 탄착지점을 북측 NLL 쪽에서 조금 더 후방 쪽으로 후퇴시켰다는 것이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21일 국회에서 탄착점 변경 여부를 묻는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질문에 “그것은 훈련 때마다 여러 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시기적으로 다르다”고 답변함으로써 사격구역이 바뀌었음을 시사했다. 종합하면 사격훈련의 성격은 그대로 였을지라도 그 규모는 대대적으로 축소되었다. 이 점 역시 북측이 대응을 자제한 이유일 것이다.

어찌되었건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한달여 만에 상황은 역전되었다. 북미 사이에 대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이같은 분위기는 2011년 1월 중순 진행된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그대로 이어졌다. 이 회담에서 미중 양 정상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하여 크게 두 가지 문제를 합의하였다. 첫째,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남북관계 진전이 필수사항임을 확인했다. 둘째,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6자회담을 조속히 개최하기로 합의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남북관계의 진전이 6자회담의 전제조건이 아니라 남북관계의 진전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필수사항이라는 것이다. 말장난 같지만 이는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는 그동안 한미 양국이 앵무새처럼 되뇌어 왔던 ‘선 남북관계, 후 6자회담’을 미국이 포기한 것이다. 미중 양국이 ‘남북관계, 6자회담 분리 접근법’을 역설한 셈이다. 자발적이건 비자발적이건 미국이 이에 동의했다. 이명박 정부? 낙동강 오리알이 된 것이다.

여기에 북측이 바로 등장했다. 미중 정상회담 공동성명이 발표되던 바로 그날 북측은 남측에 고위급군사회담을 제의했다. 그를 위한 군사실무회담도 제의했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전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조선반도의 긴장해소를 할 데 대하여 회담을 열자”는 것이다. 긴장해소를 위한 군사회담 자리에서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에 대한 것도 협상 의제화 할 수 있다는 입장을 개진한 것이다.

천안함 몽니 결국 포기하나

그러나 결국 남북군사회담은 결렬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몽니의 결과였다. 북측의 군사회담 제의에 대해 통일부 대변인은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 도발에 대한 책임있는 조치 및 추가 도발 방지에 대한 확약을 의제로 하는 남북 고위급 군사회담에 나갈 것”이라고 밝히면서 군사실무회담을 수용했다. 그러나 회담의 목적이 달랐다. 북측은 긴장완화가 목적이었고, 남측은 천안함과 연평도에 대한 사과가 목적이었다. 회담 결렬은 당여한 수순이었다.

그러나 그 후폭풍이 현재 거세게 일고 있다. 우선 이명박 정부가 협상의 자세한 사항을 언론에 공개한 혐의를 포착하기 위해 대대적인 보안감사에 착수했다. 명분이 무엇이었건 회담 결렬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었다. 왜 이명박 정부는 회담 결렬의 책임을 회담 참가자들 그리고 회담을 모니터링 했던 국방부, 통일부 관계자들에게 묻고자 하는 걸까.

믿을만한 소식통에 따르면 군사실무회담 결렬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진노했다고 한다. 회담 결렬의 책임이 결국 남측으로 전가되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이명박 대통령의 분석은 탁월했다. 북측은 회담 결렬 바로 다음 날 "우리 군대와 인민은 더이상 (남측 당국을) 상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이같은 경고는 남측 정부를 상대로 한 것이기도 했지만 사실 이는 미국과 중국에 대한 메시지였다.

즉 북측 자신은 남북군사회담까지 제안하면서 긴장완화 즉 미중 정상이 합의했던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이토록 노력하고 있는데 남측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미중 양 정부에게 공개한 것이다. 이로서 꽃놀이패는 남측이 아니라 북측이 갖게 되었다. 북측이 긴장완화에 역행하는 행동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명분을 남측의 대화 거부에 있다고 주장할 수 있는 명분을 갖게 된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3월 1일 북측 외무성은 “대화에도 대결에도 다 준비돼 있다”고 밝혔다. “정당방위를 위한 우리 군대의 물리적 대응이 불가피해지고 있으며 모처럼 마련되던 대화와 긴장완화의 기회가 사라져가고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키 리졸브 훈련에 대한 반발이었다.

미국으로서는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빌 리처드슨까지 북에 보내면서까지, 미중 정상회담에서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면서까지 합의했던 ‘한반도의 안정적 분단 관리’가 다시 위태로운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제2의 연평도 사건 혹은 연평도보다 더한 사건이 일어난다면 미국으로서는 진퇴양난에 빠지게 된다. 북측의 도발에 전쟁으로 화답할 수는 없는 처지이다. 그렇다고 상황 악화를 방치할 수만도 없다. 전면전으로의 확대는 곧 북미 사이의 전면전이 되기 때문이다. 2012년 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경제위기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내 정치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와의 전쟁은 아무리 군사 최강국이라 하여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하여 북측의 ‘무력 도발’에 바로 대화에 나서는 것도 오바마 행정부의 자존심 상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따라서 가장 좋은 것은 대화의 창을 다시 여는 것이었다. 키 리졸브 훈련에 격분하고 있는 북측을 달래는 것 밖에는 미국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한국 시각보다 늦은 3월 1일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서 나온 보즈워스 대북특별대표의 “북한의 정권교체가 미국의 정책 목표가 아니다”라는 발언은 바로 이같은 정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보즈워스는 “우리는 인도적 지원과 정치적 문제를 분리하고 있다”면서 대북식량 지원 의사도 밝혔다. 존 케리 상원외교위원장 역시 “적절한 시점에 미국과 북한 사이에 양자회담을 개최할 필요가 있다”고 이날 발언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진노한 것은 바로 이같은 상황을 읽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행동의 폭이 줄어들었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느낀 것이 분명하다. 회담 결렬의 책임을 묻기 위해 대대적인 감사에 착수한 것도 이같은 점에 연유한 것이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진화하는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3.1절 경축사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이명박 대통령은 천안함과 연평도를 언급하지 않았다. 사과라는 표현도 함께 사라졌다. “무력도발에 책임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상당히 완화된 표현이 사용되었을 뿐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속내는 복잡했을 것이다. 조중동을 위시한 냉전수구언론들이 비판하고 있는 데서 확인되듯이 천안함을 포기하는 순간 이명박 대통령은 냉전세력들에게서도 인정을 받기 어려워진다. 그렇다고 천안함을 물고 늘어질 경우 한반도 긴장 격화의 책임이 자신에게 돌아올 것은 물론이고 미중을 비롯하여 국제사회의 심각한 압박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복잡한 상황에서 3.1절 경축사가 나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몽니를 포기했다고 확신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우선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통일에 대한 철학 부재 때문이다. 3.1절에서 천안함 등이 빠진 것은 상황 변화에 따른 단순한 반응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010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이 연내 이루어질 것 같이 말했다. 그러나 한 달도 채되지 않아 남북정상회담은 사라져버렸다. 천안함 직후 이명박 대통령은 침몰 원인에 대해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그러나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북한 소행론’을 주장하며 대북 강경 몰이의 선봉이 되었다.

지금껏 이명박 대통령은 단 한번도 상황을 주도해 본 적이 없다. 상황에 이끌려 다녔을 뿐이다. 천안함 등에 대한 전향적 입장을 밝힌 것‘처럼’ 보이는 3.1절 경축사 역시 최근 상황에 대한 반응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이유이다.

이명박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인적 구성원이 바뀌지 않았다는 점도 우려할 대목이다. 김관진 국방장관은 3월 1일 일선 부대를 방문하여 “작전 시행 시 현장에서 쏠까요 말까요 묻지 말고 선조치 후 보고할 것”을 지시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북미 대화를 제의하는 문서에서 북측이 “이대로 놔두면 한반도에 핵참화가 일어날 것”이라고 적었던 사실을 폭로함으로써 동맹국인 미국측으로부터 항의를 받는 웃지 못할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청와대에서 외교안보 정책의 조정 역할을 맡고 있는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은 미국의 대북대화 재개 분위기만 감지되면 미국으로 날아가 북미 대화를 반대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돌아오는 북미 대화 딴지걸기의 첨병역할을 하고 있다. 상황 악화 껀수만 찾는 관료들이 이명박 대통령 주변에 즐비한 것이다.

속단하기는 이르다. 이명박 대통령의 3.1절 경축사가 한반도 긴장완화로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분명히 있다. 첫째, 상황을 방치했다가는 연평도 사건 못지 않은 격렬한 군사적 충돌이 한반도에서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이같은 가능성이 현실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최소한 북중미 삼국은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몽니가 더 이상 통할 수 없는 국제정치적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1년 동안 남북관계의 뇌관이 되었왔던 천안함 사건은 그 발생 1주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바람과는 다르게 점차 그 약효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천안함은 더 이상 MB의 꽃놀이패가 아니다. 꽃놀이패로서의 천안함은 이미 지난 11월 23일 연평도 사건을 계기로 사라졌다.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붙잡고 있는다면 천안함과 함께 이명박 정부 역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