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열사 추도식의 역사



전태일열사 추도식의 역사는 우리나라 노동운동 투쟁의 역사이며 현대사를 반영하는 역사이다. 왜냐하면 노동운동의 역사가 발전하면 추모행사도 발전했고, 또한 열사의 추모행사가 노동운동 발전에 중요한 계기가 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 장례식
1970년 전태일 열사 장례식은 억압받았던 노동자들의 투쟁의 시초가 되었다. 전태일 분신항거 소식을 접한 각 대학교에서는 합동장례식을 치루고 학생운동이 구체적인 민중생존에 관심을 기울이는 계기가 되었다. 노동계에서는 한국노총을 중심으로 청계피복 노동자들의 참여로 이루어졌다. 정부에서는 노동청장이 참석해서 추도사를 했고, 윤보선 전 대통령을 비롯 정치인들, 지식인들, 종교인 등 각계각층이 참석한 사회장이나 다름없는 장례식을 거행했다.
이는 '아들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장례식을 치루지 않겠다'며 투쟁해 온 전태일열사의 어머니 이소선여사의 의지와 뜻을 이어받아 노동자, 학생, 종교인, 지식인들이 함께 투쟁한 결과이다.

■ 1주기
1주기 추도식은 당시 한국노총 위원장이 추도위원장이 되어 개최되었다. 버스 12대를 동원할 정도도로 거대하게 진행되었는데 이는 71년 민중들의 투쟁이 매우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 2·3·4주기
박정희 독재정권은 전시적인 고도성장만을 위해 경제성장의 주체인 노동자를 비롯 민중들의 생존권을 짓밟았다. 이에 맞서 민중들의 투쟁 또한 거세어졌다. 정권에 위협을 느낀 박정희는 이른바 '10월 유신'이라는 친위쿠데타를 일으키고 유신독재를 강화하고 노동운동을 대대적으로 탄압한다.
열사 추도식은 청계피복노조가 주체가 되어 소규모로 조용히 치러졌다. 한국노총은 어용의 본색을 드러내면서 발뺌을 했지만, 독재정권의 탄압 아래에서도 각 대학교와 진보적인 교회에서는 꾸준히 열사 추도식을 독자적으로 거행했다. 특히 함석현 선생이 중심이 되어 '씨알의 소리'에서는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추도식을 거행하고 열사정신에 대한 강연회도 개최하였다.

■ 5주기
유신독재의 혹독한 탄압아래에서도 노동자들의 저항은 끊임없었고, 청계피복 노동자들도 경찰, 정보부의 집중적인 탄압을 무릅쓰고 투쟁하기 시작했다. 조합원들은 열사의 추도식은 억압과 착취가 있는 노동현장에서 열려야 한다면서 '전태일동지 5주기 추모위원회'를 조직해서 혹독한 공안탄압에도 불구하고 노동교실에서 추모식을 거행했다. 이것은 청계노조의 근로시간단축투쟁, 임금인상투쟁 등을 주도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6·7·8·9주기
유신독재와 정면으로 투쟁한 청계피복노조는 노조간부가 구속되는 등 탄압을 받게 되고, 6주기 추도식은 이러한 현안이 주된 투쟁의 목표가 되었다. 이 시기에 연대활동이 목적의식적으로 진행되고, 추도식에 조직적으로 민주노조운동의 지도자들이 참가했다.
정부는 1977년에 노동운동을 노골적으로 탄압하기 위해 이소선 어머니를 구속시켰고, 노동교실도 강제로 폐쇄시켰다. 노동교실의 폐쇄와 노동운동에 대한 탄압을 규탄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목적으로 추도식을 치러졌다.

■ 10·11주기
10·11주기는 전두환 군부독재의 계엄령과 집회금지로 인해 쓸쓸하고 참담한 추도식을 했다. 날씨마저 쌀쌀해서 모란공원은 정권에 대한 분노와 투쟁의지를 안으로 삼키면서도 새로운 투쟁을 준비했다.
81년 1월, 정부는 청계노조를 강제해산했고, 간부와 조합원들은 결연하게 투쟁하면서 11명이 구속되고 1명이 부상당했다. 열악한 상황에서 추도식은 구속자 가족을 중심으로 투쟁의 불씨를 일구었다.

■ 12·13주기
81년 이후는 청계노조가 강제로 해산 당하고, 이소선 어머니를 비롯 11명이 구속되고 수배자가 있는 숨막히는 상황이었다. 열사정신계승을 위해 공덕귀여사, 문익환목사, 이창복선생, 김동완목사, 정인숙선생, 이우정선생 등이 중심이 되어 '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조직되었다. 밖으로의 명분은 기념관 건립이었고, 안으로는 노동운동의 재기를 지원하는 활동을 시작했다.
청계피복노조는 노조를 찾기 위해 은밀하게 소모임을 조직하고 '노조사수투쟁'을 진행했다. 구속된 동지들이 석방되면서 1983년 '전태일동지 13주기 추도위원회'를 결성하고, 공개적으로 투쟁을 시작했다. 13주기 추도식은 정부당국의 온갖 폭력적인 탄압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으로 거행되었으며, 이 날의 승리는 민주노조가 단 하나도 남김없이 파괴된 상황에서 노동운동의 새로운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었으며, 청계노조 복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된다.

■ 14주기
1984년 4월 8일 청계노조는 '우리는 지난 날 서울시의 해산명령은 불법 부당한 조치로, 인정할 수 없으며 강제해산 당한 노동조합을 원상 복구하여 노동조합 본연의 활동을 재개한다'고 선언하고 당국의 탄압에 맞서 노동조합활동을 전개하였다. 노조를 복구한 청계피복노조는 14주기 추도식을 대대적으로 거행하였다.

■ 15·16주기
정부당국은 청계피복노조가 불법노조라고 하여 대대적인 탄압을 지속했다. 청계피복노조는 '노동조합 합법성 쟁취대회'를 강고한 노·학연대를 기반으로 하여 투쟁과 집회를 계속했다. 군부독재정권은 노조위원장을 비롯해 간부들과 조합원들을 재구속시키고, 수배하기 시작했다.
15·16주기 추도식은 노동조합 합법성을 쟁취하는 투쟁의 일환으로 힘있게 진행되었다.

■ 17주기
노동자들의 끊임없는 투쟁은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져 전두환 군부독재로 하여금 6.29 항복을 받아 내게된다. 7·8월 노동자 대투쟁은 이 땅의 노동운동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노동자의 위대한 승리로 맞이한 17주기 행사는 그야말로 감동 그 자체였다. 전국의 노동자들이 연세대학교에서 모여 '전태일 정신 계승 전국 노동자대회'를 거행하고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까지 행진했다. 이날 승리의 감동은 이 땅의 노동자들한테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

■ 17주기 이후 현재까지
87년 이후 전태일 열사 추도기간에 '전국노동자대회'가 거행되었다. 초기에는 전태일 추도식의 성격을 띄다 정세에 따라서 '전태일 추도'라는 대회 제목을 넣기도 하고 빼기도 하면서 오늘날까지 왔다. 노동자 대회와 동시에 묘소에서 거행되는 추도식 행사는 서울의류업노동조합(전 청계피복노동조합)과 전태일기념사업회가 주관하여 거행한다.

이처럼 추도행사는 노동운동의 발전과 함께 해왔다. 노동운동이 침체하면 전태일 추도행사를 통해 새로운 힘을 얻고, 노동운동이 비약하면 함께 비약한다. 그래서 추도행사는 단순히 열사를 애도하는 것만이 아니라 열사정신을 통해 살아있는 투쟁의 동력을 얻는 것이다.

-전태일열사 추도식 자료집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