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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7일째 네 번 현지방문…“승리하는 싸움 만들겠다” 김진숙 지도위원 24일째 ‘단식 풀 것’ 호소김영훈 위원장 “한진중공업, 승리할 수 있다”

노동과세계 2010.02.05

당선 7일째 네 번 현지방문…“승리하는 싸움 만들겠다” 김진숙 지도위원 24일째 ‘단식 풀 것’ 호소

  
5일 정오 김영훈 위원장이 부산 한진중공업 앞에서 단식 농성 24일차에 들어간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 단식을 풀어 줄 것을 호소한 후  조합원들을 상대로 발언을 하고 있다. 노동과세계

부산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사태가 해고자인 김진숙 지도위원의 ‘목숨을 건 단식투쟁’과 함께 점차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민주노총 김영훈 위원장의 행보가 잔잔한 ‘물결’을 일으키고 있다.  

김영훈 위원장은 5일 오전 한진중공업을 방문, 자체 단사 집회에 참석하고 지회장과 24일째 단식 중인 김진숙 지도위원을 만나 "차이를 극복하고 살아서 싸우자"며 단식을 풀 것을 호소했다.  

그래서일까. 김 위원장이 서울로 복귀하던 시각인 오후3시반경 김진숙 지도위원이 단식을 풀고 병원으로 후송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김 위원장은 “너무 다행이다”면서 “이제 이 투쟁을 승리로 만들어야 한다"는 결의를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싸움을 할 때 지도자가 가장 먼저 챙겨야 하는 것이 병사의 상태를 살피는 일인데 이 점에 우리는 소홀한 것 같다”면서 “성폭력 사건도 마찬가지지만 당사자에게 먼저 다가가 마음을 치유하는 노력이 있어야 그 사람 마음에 조금이라도 가 닿을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방문은 당선 이후 일주일 만에 네 번 째 갖는 행보라는 점에서 김 위원장이 이번 사안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지를 짐작해주는 대목이다. 김 위원장은 “사용자들은 정리해고를 경영상의 이유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면서 노동자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다”면서 “제2의 쌍용차 사태가 절대로 나와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지만 조직 내 내부단결을 의미하는 이번 ‘매듭풀기’는 김 위원장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리 쉽지 않아보였다. 김 지도위원에게는 ‘20년’이라는 해고의 설움과 절망이 있었고, 지회장에게는 누군가에게 쉽게 말 못할 어떤 ‘서운함’ 같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은 “지회장이 서운할 일이 분명 있을 것이지만 20년 동안 당한 해고의 분노와 설움에 비하면 그리 크지 않을 수 있다”면서 “복직시키지 못한 것도 결국 우리의 책임이고, 대승적 차원에서 품고 간다면 지회장에게 더 좋은 결과를 안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지도위원의 단식을 풀기까지에는 지회 조합원의 노력과 요구도 크게 작용했다. 이날 천막 앞에서는 200여명의 조합원이 연좌한 채 ‘단식을 풀 것’을 호소했다. 한 조합원은 “우리는 살아서 싸워야 한다”면서 “인생 백 년, 천 년 살 것도 아닌데 살아서 단결해서 싸우자”고 힘주어 말했다.  

한편 이날 집회는 조합원 700여명이 모인 가운데 사내 약식집회를 갖고 중앙동까지 약 50분가량 가두행진한 후 마무리했다. 한진중공업지회는 이날 시한부 전면파업을 마무리하고 9일부터 다시 부분파업을 전개할 것으로 전해졌다. 9일에는 지역차원의 대규모 집회가 개최될 예정이다.

강상철기자/노동과세계


아래는 김진숙 지도위원 인터뷰 내용이다

[인터뷰] 해고 칼바람 앞에 선 '김진숙'
단식 23일 “죽기 전에 이기는 싸움 해보자”



   '해보고 싶다 이기는 싸움을' 노동과세계가 김진숙 지도위원을 찾은 날은 단식이 17일 차로 접어들던 지난 29일 이였다.얼굴에 짙어진 검버섯과 힘들게 뱉어내던 목소리는 이번 투쟁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지 알 수 있게 주었다.
단식 21일 차에 접어들던 2월2일 한진중공업은 결국 352명에 대한 정리해고 신고서를 부산지방노동청에 제출했다. 이명익기자


“아주 평범한 얘긴데 현장에 있는 비정규직부터 돌아봤으면 좋겠다. 그 한 마디가 참 절박한거 같다. 지금 상황에서는.”

  침묵이 흘렀다. 조합원들에게 한 마디를 부탁했지만 입술을 들썩이다 그만 두기를 몇 차례. 천천히 입을 떼고 그가 한 말이다.


  지난 1월 29일 부산 영도구 봉래동 한진중공업 앞 천막.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에 맞서 18일째(현재 23일) 단식투쟁으로 맞서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을 만났다.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용접노동자. 24년차 복직투쟁노동자. 지난 해 부당해고 결정을 받았지만 두 달째 복직되지 못하고 출근투쟁을 벌였던 그가 새삼스레 영도바다 칼바람에 맞서 천막을 쳤다. 자신의 복직이 아닌 동료들의 구조조정을 막기 위해서다.

  한진중공업이 350명의 정리해고 명단을 발표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김 지도위원은 2003년을 떠올렸다. 2000년대 들어 가장 격렬했던 투쟁 과정에서 열사가 된 2명의 회사 동료 김주익, 곽재규를 잊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도 650명이 직장을 잃었다.

  그리고 13일 그는 기약 없는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죽기 전에 살아서 이겨보자’는 마음을 담고 배수진을 쳤지만 인터뷰 나흘 뒤인 2월 2일 한진중공업은 노동부에 정리해고서를 제출했다. 노조는 총파업을 선언했지만 사측은 아직 발표하지 않은 명단을 손에 쥐고 지루한 시간 싸움에 들어갔다.

  김 지도위원의 몸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30분은 거뜬했던 언론과의 인터뷰 시간은 10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얼굴을 황달기로 점점 제 빛을 잃고 있다. 김영훈 신임 위원장이 취임 후 반나절도 안돼 천막을 찾았지만 그는 거동조차 제대로 못해 결국 만나지 못했다.

  시간은 흐르고 상황은 불리해져가는 현실. 김 지도위원의 육성을 담았다.


  △단식농성

  = 제가 한진중공업에서 해고된 지 만 24년이다. 지난 해 12월달에 민주화심의위에서 저에 대한 해고가 부당해고라는 결정과 당시 한진중공업이 삼자개입으로 고소해서 구속됐던 일에 대해 명예회복 결정을 받았다.

저는 24년 동안 복직에 대한 꿈을 한시도 포기 안한 사람이다.
결정을 받고 출근시위를 12월 30일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출근시위를 해보니 조합원들이 줄어드는게 눈에 보이더라. 하청노동자들, 말로는 1000명이 줄어들었다는데 누구도 통계조차 못낸다. 그게 제 눈에 보이더라. 하루하루 줄어드는게. 그리고 출근시위 하는 와중에 회사가 정리해고방침을 발표했다. 급기야 26일 정리해고명단을 통보하겠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굉장히 절박해졌다. 마음이.

쌍용차같은 상황 되풀이되기전에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막아내겠다 생각했다. 전 조합원 신분인데 노조출입도 안되는 상황에서 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 나름 생각 많이 하다 내린 결론이 길바닥에 앉아서 단식하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었다. 더구나 한진중공업은 이미 2003년 구조조정 과정에서 두 사람의 목숨을 잃었던 뼈아픈 과거가 있기 때문에 죽기 전에 누구든지 살아서 이 일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됐다.


  △한진중공업, 반복되는 정리해고

  = 싸우지 않으면 진다. 저들의 의도대로 진행될 것이다. 올해 이미 임원들 대상으로 발표 내용이 울산 다대포, 율도 공장을 없애겠다거다. 이미 마산은 없어졌고 영도도 특화해소 조선 아닌 돈 되는 산업을 전환하겠단다. 그리고 조선은 필리핀으로 집중하겠다는게 회사의 방침이다.

그렇게되면 수천명의 사람들이 아무 대책 없이 내몰리는 것이 뻔히 예견되는 상황에서 이걸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지 않나. 회사는 끊임없이 30% 구조조정을 밀어붙이고 희망퇴직과 단협계약을 종용하고 있다. 노조는 어제 집중교섭기간을 정해놓고 투쟁을 하지 않는데 진척이 없는 상황이다.


△단식으로 정리해고를 막을 수만 있다면...

  = 한진중공업은 흑자기업이다. 수주를 못받은 것도 아니다. 수주량을 필리핀 공장으로 빼돌린거다. 그런 것들이 정리해고의 명백한 의도가 있다고 보여진다. 그동안 소문으로 떠돌던 게 실현되는 과정이다.

저는 지금까지 우리가 투쟁해온 게 저를 포함해서 운동한다는 사람들이 참 관성적이었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한다.

저만 해도 정리해고 투쟁 등 투쟁하는 사업장을 1년에 수백군데 다녔는데 어느 순간 이런 상황이 일상화된거다. 어디가 투쟁에 들어갔다더라, 누군가 해고됐다더라, 어떤 사업장을 깨졌다더라...거기에 더해 누군가는 죽었다더라, 이런게 일상이 된거다.

분노조차 일상화되고 절망이 구조화되어있는. 그래서 저는 참 순진하게 생각한게 제가 천막치면 그날로 민주노총이 천막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러기까지 16일이 걸렸다. 대책위가 천막을 치기까지. 하여튼 그런 관성적인게 있더라. 우리가 흩어져서 계속 패배해왔던, 모여서 승리할 길을 찾는게 아닌 패배의 과정을 되풀이했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이 싸움은 죽지 말고 싸워보자는 제 나름의 절박한 호소다. 저 역시도 단식투쟁을 많이 봐왔다. 철거농성, 천막농성, 삭발투쟁, 단식농성 이렇게 일정 단계가 있는데 그것도 안되면 죽는거고. 그런 것들, 그런 관성화에 바늘구멍이라도 냈으면 좋겠는데 그게 잘 될지 모르겠다.


  △1986년과 2010년, 단식투쟁

  = 그때는 박스에 깔고 앉아있었다. 일주일동안. 그때는 아무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조합원들만 오고. 그때는 단체도 없고 아무도 없었다. 그때는 노조가 뭐라도 하면 직장폐쇄에 들어가고 노동자를 큰 일난 줄 알던 시대다.

조합원 부인들 찾아와서 울고 불고. 그래서 중단했는데 그때보단 지금이 찾아오는 사람들도 많고 천막도 많고 엄청 달라졌다. 그런데도 왜 계속 패배할까...


  △24년의 복직투쟁을 버티게 한 힘

  = 저를 24년 동안 버티게 했던 힘은, 어제(1월30일)도 제가 쓰러져있다 조합원들 만나고 다시 살아나면서 생각한게 ‘아, 우리 조합원들이었구나’라는 거다. 그분들은 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여기가 언젠가는 돌아와야 할 고향이고 저의 모든 것, 저를 지탱해왔던 모든 것이었다.

저는 86년 2월 18일 제24기 대의원에 당선되자마자 바로 대기발령에 바로 부서이동, 그리고 해고되는 과정을 5개월만에 다 겪었다. 아마 누구도 이런 과정을 납득못할거다. 그리고 쫓겨나서 길바닥에 앉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구속되고 수배당하는 삶을 왜 사냐, 좀 편하게 살지라고 말한다. 그런데 저는 이런 삶 외에 다른 삶이 있다는 걸 모른다. 한번도 다른 삶을 꿈꿔본 적도 없고. 그냥 고생스러운 삶을 왜 사냐고 하는 사람들한테 이건 내 삶이었을 뿐이다라고 말해왔다. 나한테 주어진 삶, 그리고 그게 그냥 복직을 이뤄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 단식, 그리고 부채의식

  = 단식이라는 것이 고립적인 투쟁이지 않나. 저도 그동안 동지들 단식투쟁하면 천막 앞에서 되돌아왔다. 힘내라고 말하기로 그렇고 밥 한 그릇 사줄 수도 없고 쾡한 눈 보기 고통스러워서 저도 말리는 입장이었다. 그만큼 극단적이고 고립적인 방식이라 저도 동지들에게 죄송하다.

그런데 운동이라는 게 그냥 역시나 추억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진행되는 일이고 이 시각에도 흘러가는 일이고 지금 현재 자리에서 세상을 어떻게 조금이라도 바꿀 것인가, 그걸 고민하고 그렇게 마음을 높이는 일들이 모이면 그게 역사가 된다고 생각한다.

저도 열사들에 대해 상당히 부채의식을 갖고 있는 사람인데 그냥 나날이 나날을 살 수밖에 없다. 자신의 나날을 애쓰면서 사는 수밖에 없는 거 같다.





   '사랑이라 부른다...'  "저의 첫사랑이자 마지막 사랑일 조합원 동지 여러분 스물 한 살. 그때 저는 아저씨들이 보고 싶어 회사에 왔습니다" (단식 17일차에 쓴 김진숙 지도위원의 편지 中) 이명익기자


  △ 김진숙과 한진중공업
= 제가 21살 때 용접공이 됐다. 그때만해도 아저씨들이 무서웠다. 말도 막하고 행동들도 거칠었다.

하루는 파란 안전모와 반짝반짝한 안전화, 깨끗한 안전복을 입고 갔더닌 아저씨 세 명이 배 밑으로 불러 각자 하나씩 뺏어가더라. ‘넌 어차피 하루도 못 버티니 내놓고 가라’면서. 그게 그렇게 무섭더라. 그리고 아저씨들하고 말도 잘 안했다. 입만 열면 욕하고 제가 지나가면 일부러 여자애 들으라고 음담패설하고. 그런데 계기가 된 일이 있다.

철판에 두 다리가 깔려 다 부러져 병원에 입원했었다. 입원 기간이 길었는데 그 무서운 아저씨들이 돌아가면서 죽을 끓여오더라. 태어나서 그렇게 각양각색의 죽을 먹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아저씨들에게 은혜 갚는다고 퇴원하고 집을 찾아다녀보니 단칸방에 기본이 네다섯긱구가 살고 있고 부인들은 웬만한 부업은 다하고 있더라. 그때 그 아저씨들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왜 이들이 술만 먹으면 회사 다 때려부수려다가도 아침에 순한 양이 되는지 이해가 되더라.

그래서 그런 삶들을 바꿀 방법을 생각하다가 노조 대의원에 출마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왔다. 지금도 아저씨들은 그런다. 이제 나이도 들었는데 복직시켜준다고 그 힘든 일 다시 하겠냐고.

나는 단 하루라도 좋으니까 내 손으로 사표쓰고 나오겠다고 답한다. 전 이게 이 세상 모든 해고자들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공장을 한 달을 다녔든 일년을 다녔든 오년을 다녔든 누군가에 의해 강제로 인정할 수 없는 이유로 쫓겨난다는 것 견딜 수 없는 일이거든.

그 당시 안전화와 작업복, 안전모가 아직도 현장에 있다. 아니, 아직도 있을거라 믿는다. 그 옷을 입고 아저씨들과 밥도 먹고 일도 하고 그런 일상, 그런 평화로움. 제 삶에서 가장 평화로웠던 시기가 한진중공업에서 일했던 시기엿다.

제가 돌아가서 노조 간부가 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진중공업을 어떻게 하려는 것도 아니고 저는 그 평화를 꿈꾸고 있는거다. 그 평화를 단 하루도 포기할 수 없었다.


  △2003년, 김주익과 곽재규

  = 2003년에도 회사는 엄청난 흑자였다. 그런데 6백명 명퇴라는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래서 2002년과 2003년 2년을 싸웠다. 그런데 이미 명단이 발표되고 나니 투쟁이 안됐다. 일하는 사람은 일하고 현장은 갈라졌다. 어디나 그렇듯이.

2년을 투쟁하다가 결국 김주익 지회장이 크레인에 올라갔다. 그리고 125일을 매달려있었는데도 투쟁이 잘 안됐다. 교섭은 물론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래서 지회장이 죽고 나서 2주가 넘도록 장례도 못 치렀다.

진척이 없었다. 지회장 시신이 그대로 크레인 위 드라이아이스에 넣어진 채 있었다. 그런데 보름이 안돼 곽재규가 죽고나서야 20년 넘는 숙원사업이 다 해결이 됐다. 20년 해고자도 저 하나 빼고는 그때 다 해결이 됐다.

참 뼈가 저린게 회사는 당시 비싼 영도땅 위에 곽창수, 김주익, 곽재규 열사의 추모공원을 만들어주고 노조사무실을 5층 건물에 새로 들여줬다. 30억 들여 식당도 만들어주고 연말 성과급도 듬뿍 줬다.

이렇게 해줘도 회사가 안망하고 오히려 더 잘되는데, 생산성도 더 올라가는데 굳이 두 사람을 죽여야 했을까. 그런데 그 일을 6년만에 되풀이한다고 하니 용서도 용납도 안되는거다.




   '패배의 과정을 되풀이 할 수 없다'  "싸우지 않으면 진다. 저들의 의도대로 진행될 것이다. 올해 이미 임원들 대상으로 발표 내용이 울산 다대포, 율도 공장을 없애겠다거다." 이명익기자

  △반복되는 열사의 죽음은 왜...


= 우리 문제라고 생각한다. 동료조차도 관념이 되버린거다. 이 싸움은 조금만 밀어붙이면 이길 것 같다. 이미 정당성도 명분도 없는 구조조정이라는 사실이 다 알려져있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네. 조금만 밀어붙이면 되는데, 우리 조합원들 잘 싸운다. 오라면 다 온다. 그런 기본 동력이 있어서 조금만 힘을 모아 밀어주면 될 거 같은데 그게 안되서 너무 안타깝다. 일회성 집회나 기자회견, 대책위 결성 말고 한번 치열하게 싸워서 한번만 이겨봤으면 좋겠다. 제대로.


  △민주노조운동의 위기

  = 우리 내부의 위기가 제일 크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그동안 조합원들을 탓해왔다. 나서지 않고 모이지 않고 임금에만 목을 맨 조합원들이라며 탓해왔는데 전 100% 간부들의 위기라고 생각한다. 간부들이 오히려 위기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저는 정파의 문제는 잘 모르겠다. 저는 중앙에 안있어봐서 별로 심각하게 생각안했는데 선거 때마다 심각하게 불거지고, 투쟁해보니 똑같은 사안도 다르게 판단하고 행동이나 대응이 달라지는 걸 보고 희한하다고 생각했을 정도다.

그래서 전 말만으론 정파를 구별못하겠더라. 그런데 행동은 달라지더라. 그때 이게 정파의 문제구나 생각하게 됐다.


  △노동운동의 미래

  = 있다. 과거에도 왕들이 나라를 말아먹었다. 전 노총내에 그런 간부가 있다고 본다. 말아먹는. 운동을 왜곡하고 혼란을 부추기는 지도부도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거기에 끊임없이 맑은 물을 공급하고 산소를 흐르게 했던 것이 조합원들의 역동성이라 생각한다.

끊임없이 투쟁해 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나마 노동운동을 유지하고 지탱해온 거 아닌가. 정말 간부들이 처절히 반성하고 현장에 갔으면 좋겠다. 진짜 20년 씩 상근해 온 선수들이 현장으로 가는 하방연대 체계들이 구조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노조를 방문하더라도 사무실 가서 간부들과 얘기할 게 아니라 현장에 가서 노동자들이 일하는거 보고 배우면서 그들을 진정성있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책상 머리에서 자료 만들기만 하지 말고. 우리 운동의 진정성, 역동성 있게 회복 못하면 그나마 비정규직 투쟁으로 지금까지 만들어 온 것조차 잃을 수 있다. 이게 제 절박한 심정이다.


  △조합원

  = (침묵) 아주 평범한 얘긴데 현장에 있는 비정규직부터 돌아봤으면 좋겠다. 그 한 마디가 참 절박한 거 같다. 지금상황에서는.


  △신임 지도부

  = 좀 치열하게 그리고 초심 잃지 말고 어쨌든 김영훈 위원장이 KTX 아직 안 끝났으니 그 문제부터 챙겨보시고, 그런 식으로 모범을 보여주셨으면 좋겠다. 조합원들이 보고 ‘아, 저 사람 정파가 만들어 낸 위원장이 아니라 진짜 존경할만한’ 지도자라고 인정받았으면 좋겠다.


  △한국사회와 노동계에 말한다

  = 죽기전에 이기는 싸움을 해보자. 그 한 마디.



최병성 객원기자/ 노동과세계 4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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